구제역 바이러스의 침공으로 전국이 꽁꽁 얼었습니다. 마음이 얼고, 인심이 얼고, 급기야 눈물마저 얼어버렸습니다. 설에는 그토록 기다렸던 아들딸들의 귀향길도 말려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여전히 날씨는 춥고 구제역은 진정될 기미가 없습니다. 농민, 공무원, 경찰, 군인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바이러스에 대항하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다 함께 마음과 정성을 보태야 합니다. 축산농민들의 애타는 심정도 다독이고, 길목을 막고 필사적으로 소독작업을 하고 있는 분들께도 용기를 북돋워드려야 합니다. 이번 구제역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장기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연과 인간 간의 전쟁에서 열쇠는 늘 자연에 있었습니다. 장꿔칭이 쓴 '조화사회연구'(인민출판사, 2006)를 보면 2003년 사스(SARS) 바이러스가 중국을 습격했을 때의 상황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중국인 전체가 몰사할 뻔했던 사스는 2002년 11월 16일 광동성의 불산(佛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폐렴으로 입원한 환자가 고열과 기침을 계속하는 증상을 보였습니다. 각종 항생제를 투여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2003년 1월 상순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28명으로 늘었는데 그 중 의료인이 13명이었습니다. 4월 6일 무렵에는 1천203명으로 감염자가 늘었지만 광동성 정부는 공공위기관리 시스템을 발동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광동의 사스는 중국의 심장부 베이징으로 전이됩니다. 2003년 3월 1일 베이징에서 유사환자가 병원을 찾았습니다. 광동성의 한 보석가게에서 일하던 26세의 여자였습니다. 3월 31일 베이징에서 사스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12명으로 늘었습니다. 4월 9일 확진환자가 22명으로 늘었고, 4명이 사망했습니다. 4월 20일 무렵 사스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자 베이징시는 공공위기관리 시스템을 가동하여 거리를 봉쇄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합니다만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자칫 13억 중국인이 전부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마저 팽배해졌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5월 26일을 기점으로 사스의 세력이 약화되고, 발병자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6월 2일, 베이징에서는 더 이상의 발병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시정부는 사스를 효과적으로 통제했다고 발표합니다. 8월 16일 최후의 사스환자 9명이 퇴원함으로써 베이징의 사스는 정리되었습니다.
그 끔찍한 전쟁을 치르면서 중국인이 배운 것은 조화(和諧)입니다. 인간 사이의 화합과 믿음,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배운 것입니다. '격리'와 '소독'을 통해 화합을 배울 수 있었고, '봄'만이 싸움을 말릴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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