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서 조약국' 조경제 옹의 90년 삶의 궤적 오롯이

'기다리던 봄 기운이 이제야 살금살금 내 곁에 다가온다. 얄밉고 지겨웠던 겨울을 참고 견디며 기다렸건만, 아직 알동말동 감질난 봄빛이다.'

수수하고 단아한 멋을 자랑하는 표지에 '자연 사랑, 노을, 아버지 마음, 자식들 생각, 가을꽃, 맑음, 가을단상' 등 작은 제목들을 곳곳에 낙엽처럼 배치한 책이다. 수수한 디자인과 자유롭게 흩어져 있는 작은 제목들을 보면,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책은 '성서 조약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흥생한의원' 원장 혜산(慧山) 조경제(90'사진) 선생이 30대 시절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써온 일기와 시적 단상, 자녀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세상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묶은 것이다.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나으며, 평생 쓰고도 다 쓰지 못하는 보배이니라. 너희가 남부럽지 않게 세상에서 잘 살아가려면, 두 글자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 한 글자는 근(勤)이요,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두 글자-

평생 근검절약을 신조로 살아온 조경제 선생의 집은 2채다. 한 채는 70여 년 전 부잣집 문간방을 헐 때 나온 재목으로 지은 옛집이고, 그 옆에 넓혀 신축한 집은 1974년 지은 것이다. 그 집 식구들은 옛집과 새집으로 구분하지만 오래됐다는 점에서 두 집 모두 구식이기는 마찬가지다.

부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조경제 선생의 방은 좁고 어둡다. 푹 꺼지고 서늘한 구들, 어둠침침한 방, 얼마나 오랫동안 도배를 안 했는지 빛바랜 벽지, 낡은 앉은뱅이 책상과 누런 공책, 족히 20년은 넘었을 구닥다리 텔레비전, 개켜 놓은 요와 이불 한 장이 전부다. 선생이 평생 썼거나 쓰다가 폐물이 된 농기구며 가구, 생활용품들은 또 '가정 내 박물관'(혜산관)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선생의 손에 들어왔던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전시돼 있었다.

초가삼간에서 살림을 시작한 조경제 선생은 50년 넘게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근검절약을 실천했다. 그는 지금껏 어떤 물건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러니 자식들도 그러했고, 다 큰 자식이 그러니 그 아이들(손자손녀)도 그렇다. 신세대 손자는 낡은 휴대전화를 버렸다가 혼이 나기도 했다. 중년이 된 큰아들은 운동화를 신고 낡은 자동차를 끌고 다닌다. 언제라도 일할 수 있게 말이다.

'좋은 꽃을 보고 싶으면, 좋은 꽃씨를 심어라. 좋은 열매를 바라거든 좋은 나무를 심어라. 마찬가지로 성공한 삶을 바란다면 좋은 자손을 길러라.' -좋은 열매-

조경제 선생은 자신은 물론이고 자식들에게 근검절약하고 엄격하게 생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렇게 모은 돈을 구두쇠처럼 쥐고 있지는 않았다. 가난한 이웃들,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마을의 어른들,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문화예술인을 위해 아낌없이 썼다. 가난한 문화예술인들에게 문화공간을 내어 주었고, 직접 지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 언덕에 기대고 있다.

'나는 나이기에, 가족과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면 이름은 없어져도 좋습니다.' -영원한 빛을 바라며-

1922년 대구 달서구 감삼동에서 태어난 조경제 선생은 1954년 한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이래 지금까지 '흥생한의원'을 열고 있다. 90의 나이에도 그는 "환자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여기며 치료하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라며 종일 진료한다.

'놀고 싶을 때 놀고, 먹고 싶다고 다 먹고, 쓰고 싶은 대로 마구 써버리면, 고된 훈련이 아니지 않은가.' -고된 훈련-

'척박한 땅이 저절로, 아무 손길도 없이 옥토가 되나?' -옥토-

이 책은 부지런하고 지혜롭게, 그리고 절약하며 살아온 한 어른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책 외에도 선생은 또 1991년부터 2008년까지 쓴 일기를 정리해 2009년 출간했던 '홍안'(紅顔'회고록)도 이번에 개정판을 펴냈다. 221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