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내 사랑은

내 사랑은 길고 깊은 골절의 와중

뼈 부러진 아내를 위해 우족을 씻고 있는 남자의 물 묻은

손등 위

뼈 부러진 아내를 위해 젖은 홍화씨를 볶고 있는 남자의

구부정한 어깨 위

뜨거운 솥 안에서 하염없이 휘둘리고 있는 나무주걱의

자루 끝

이향지

사랑은 감미롭고 따끈따끈한 그런 거 아니에요. 무진장 설레고 부풀어 오르는 그런 것도 아니에요. 주는 거예요. 견디는 거예요. 시커먼 어둠의 아가리를 보면서 누군가를 뭔가를 위해 자기를 소진하는 그런 깊이예요. 주고 또 주어도 자꾸 고이는 바닥없는 진정이에요. 그걸 통해 자기를 완성하는 참 고난도의 희생이에요. 그러니 쉬 사랑한다 말 마세요. 사랑했다 결론하지도 마세요.

사랑은 영원한 진행형의 형벌이에요. 잔혹하게도 그 형벌의 정점에서 맛 볼 수 있는 충만 만이 본인의 것이에요. 추운 무지개예요. 얼음꽃이에요. 뼈 부러진 아내를 위해 우족을 씻고, 홍화씨를 볶고, 뜨거운 솥 안에 한없이 휘둘리는 나무주걱처럼 자신을 다 내어주는 성심, 그래도 섣불리 '사랑'이라 입 밖에 내지 않는 그런 겸허예요. 미증유예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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