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살던 고향인 대한민국 경산을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습니다."
이역만리 우즈베키스탄 아리랑요양원(원장 이헌태)에서 생활하고 있는 송 나제즈다(84) 씨는 민족 고유의 명절 설을 맞아 아버지가 생전에 그렇게도 가보고 싶어하던 고향에 아버지 대신 꼭 가보고 싶어했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그대로 담고 있는 송 씨는 연해주로, 우즈벡으로 옮겨다니면서 '피붙이'의 연락처를 간직한 채 한 번도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송 씨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아리랑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41명의 노인들 중 유일하게 부모나 조부모의 고향이 남한이며, 고향 친척들의 연락처를 갖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연해주나 북한 출신들이다.
송 씨의 아버지 송재명(1890∼1968) 씨의 고향은 경산시 와촌면 계전리. 송 씨의 부모님은 경산에서 결혼을 한 후 어렵게 살다 먹고 살기 위해 7살 딸과 2살 아들을 데리고 러시아 원동(지금의 블라디보스톡, 우수리스크 등을 포함한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했다. 한국에서 온 아들과 딸은 원동에서 사망했고, 이후 자신을 비롯해 1남3녀가 연해주에서 태어났다.
송 씨는 9살 때 부모와 함께 우즈벡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1937년 겨울, 일본제국주의 스파이를 우려한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 고려인 20만 명이 한 달에 걸쳐 열차로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옮겨진 것. 부모와 3남매(막내 여동생은 우즈벡으로 강제이주 후 출생)가 우즈벡 타슈켄트주 양기율 지역으로 온 것이다.
"우즈벡에 도착한 후 아버지는 자루공장에서 일하다 인근 여러 지역 콜호즈(집단농장)로 옮겨다니며 마, 목화, 벼 등 농사일을 했습니다. 2차세계전쟁 때를 제외하고는 큰 어려움 없이 살았죠."
아버지는 늘 고향을 그리워했다. 자식들을 앉혀 놓고는 "내 고향에는 내 동생 2명이 살고 있다. 내가 살던 마을에는 일가친척도 많이 살고 있는데, 57가구에 이른다"면서 "지금 우리가 고향에 갈 수 없지만 나중에 너희들은 아버지 고향이니 꼭 가보거라" 라고 했다.
송 씨는 부모와 4남매의 가족이 주변에 일가친척 하나 없이 늘 외롭게 살았다. 특히 4남매 중 오빠 송원호(1924년생) 씨와 여동생 송 마리아(1931년생)·알렉산드라(1941년생) 등이 모두 고인이 돼 10여 년 동안 홀로 지내고 있다.
송 씨는 21살 때인 1950년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은 대학을 졸업해 주로 조직 관리책임자로 일해서 평생 고생을 모르고 살았다. 아들(45)과 딸(60) 남매를 뒀다. 1995년에 남편이 죽은 뒤 우즈벡 수도 타슈켄트시 콜호즈(집단농장) 단독주택에서 혼자 살다 카자흐스탄으로 돈 벌러 간 아들이 살던 집을 팔아버려 지난해 11월 아리랑요양원에 입소해 여생을 보내고 있다.
아리랑요양원 이헌태 원장은 "송 할머니의 여동생인 송 알렉산드라가 부모가 갖고 있던 고향 주소 등을 참고해 1990년대 초반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경산에 살고 있는 사촌오빠와 편지를 통해 몇 차례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여동생이 2000년에 사망하는 바람에 연락이 끊겼다"라고 전했다.
송 씨는 귀가 어두운 것을 빼고는 건강하며, 한국말도 어느 정도 해서 한국인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다.
송 씨는 "이역만리 먼 땅에서 평생 일가친척 하나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내 뿌리이며, 아버지 고향인 경산에 죽기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염원했다.
그는 죽기 전에 꼭 아버지의 고향 땅을 밟아보고 친척들을 만나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하루빨리 이루어 질 것을 바라고 있다.
경산·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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