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4일 밤. 설 연휴 특집으로 KBS1 TV에서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큐형식으로 제작한 영화 '울지마 톤즈'가 방영되었다. 영화의 막바지 무렵, 톤즈의 명물 브라스 밴드의 선두에 선 아이들이 한 남자의 사진을 한 장씩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머리엔 비니를 쓰고 하얀 치아를 드러낸 채 하늘을 응시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한 사람…. '톤즈의 아버지', 고 이태석 신부가 생전의 사진으로나마 마을주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그들과 이별을 고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주민들은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애써 슬픔을 억누르는 모습이 화면에 펼쳐진다.
2010년 1월 14일.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오로지 남(南)수단의 가난한 남쪽 마을인 톤즈(Tonj)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고 이태석 신부가 한창 나이인 48세를 일기로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눈물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하고많은 곳 중 그는 왜 톤즈로 갔을까. 로마에서 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프리카 선교 답사를 위해 수단의 톤즈를 찾은 이 신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조차 부족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참담한 현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이 신부는 생각했다.
사제서품을 받은 후 그는 망설임 없이 톤즈를 선교지로 신청했다. '가장 보잘 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는 성경의 말씀이 그의 한 번뿐인 삶의 길을 결정하게 해준 것이다.
그는 1962년 9월 19일 10남매 중 아홉째로 출생하여 이름은 클 태(泰), 주석 석(錫) 태석으로 지었다. 그의 이름이 가진 성격을 보면 상관(傷官)이 강하게 작용하는 이름으로 풀이된다. 남자의 이름에서 상관이 강하면 재주와 재능이 뛰어나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 눈썰미가 좋고, 모든 일에 습득이 빠르며 예능계통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많다. 그가 배우지 않고도 많은 악기 연주와 지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름이 가진 성격 때문일 것이다. 자기 주장이 강하다는 것은 외곬 성격이다. 한번 옳다고 판단되면 그대로 밀어붙인다. 후회도 하지 않는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자기만족형이다. 이러한 성격이 그를 무지와 질병이 만연한 수단의 톤즈로 이끌었다.
톤즈 사람들은 이 신부를 '쫄리 신부님'이라고 불렀다. 그의 영어식 이름인 '존리'(John Lee)를 빨리 발음하다보니 그렇게 굳어진 것인데, 그들은 '쫄리'를 부르며 행복해했다.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 사람 '이태석'. 그는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전역하여 사제가 되기 전까지 의사의 길을 걸었다. 그가 외과의사로 살았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재능으로 부와 명성을 얻어 가난했던 자신의 지난 시절을 보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외모도 준수하고 성격도 자상해 좋은 배우자를 만나 소위 '엘리트'의 삶을 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수단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톤즈 사람들에게 베풀어주고 그는 떠났다.
영화를 본 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의 진료실에 걸린 액자 속의 글귀 'love one another'. 서로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그만큼 완벽하게 지킨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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