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욱의 박정희 이야기] (14)주민들이 이룩한 동해안의 기적, 사방기념공원

1960년대 우리나라의 산 가운데 태반이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다. 특히 한'일 항공노선이 통과하는 경북지역의 산들은 황폐한 붉은 산이 대부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일본의 산들은 푸르고 울창한 반면, 한국의 산들은 나무가 없어서 붉은 빛깔이었다.

1960년대 초 산림법의 제정과 함께 농림부의 산림국을 그 외청(外廳)으로 승격시켰다. 그와 함께 '치산녹화 7개년 계획'(1965~1971), '수계별 산림복구 종합계획'(1967~1976)과 새마을 사업으로 '새마을 붉은 땅 없애기' '마을 산 푸르게 가꾸기'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같은 산지 가꾸기 사업을 내무부에서 맡아 했는데, 당연히 농림부에서 해야 할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내무부에서 맡아서 하는 데 대해 이견(異見)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추진력 때문이었으며, 그 뒤 산림청은 내무부의 외청이 되었다. 그와 함께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10년 이내에 국토 녹화를 완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1971년 9월 17일의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영일군(현재 포항시) 기계면 문성동에 우수 새마을 시찰을 나왔다. 그 자리에서 우리나라 산림 황폐의 대표적 현장이라 할 수 있는 흥해읍 오도(烏島)마을을 지적하면서 사방(砂防)사업을 실시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에 따라 4천538ha의 산지에 총 38억2천800만원의 예산으로 5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업이 추진되었다. 하지만 현장을 보지 않고서는 그 사업이 얼마나 방대하고 난공사였는가를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지역은 이암(泥岩) 지대로서 매우 척박하였다. 그래서 전체 사방지를 등고선에 따라 계단을 만들고, 그 가운데 절반 이상에다 '줄떼공'을 시공한 뒤, 그 뒤쪽에는 질 좋은 객토를 넣었다. 그러고 나서 토질에 따라 적합한 나무를 심었고, 계단의 경사면과 끝 부분에는 싸리'아카시아'풀씨를 파종하였다. 그와 함께 계곡에는 석축을 쌓았으며, 토사 방지와 수분 보전을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지형상 중기(重機)의 사용이 불가능해서 석축 쌓을 돌을 남정네들은 지게로, 부녀자들은 머리에 이고 산 정상까지 날라야 했다. 험준한 산기슭을 계단식으로 개간하기 위해 밧줄을 허리에 감고 삽질하던 남정네들의 피와 땀, 산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 씨를 뿌리던 부녀자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1975년 4월 16일, 연두순시차 대구에 내려온 박정희 대통령은 현지를 방문하고자 했다. 그러나 문제가 많았다. 진눈깨비가 내려서 헬리콥터가 뜰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도로가 제대로 개설되지 않은 산골이라서 자동차 이동이 불가능했다. 경호 관계자와 비서관들이 적극 만류하였으나 대통령은 막무가내였다. 대통령 전용차가 포항에 이르자, 포항종합제철에서 준비한 지프가 여러 대 나왔다. 헬기로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울퉁불퉁한 산길을 1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눈비가 내렸고, 바닷바람이 매몰차게 불었다.

당시 경상북도청 산림국장이던 박상현(朴商鉉'작고)이 현황보고를 했다. "눈보라치는 바닷바람과 매서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 험준한 골짜기를 친히 찾아주신 대통령 각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각하, 바로 옆에 수령(樹齡) 100년이나 되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이곳이 비록 풀이 자랄 수 없을 정도로 메마르고 척박한 땅입니다만, 기필코 저 소나무와 같이 울창한 산림으로 조성하겠습니다.……" 대통령은 보고를 듣고 난 뒤, 눈보라치는 산중턱까지 돌아보면서 작업 인부들과 공무원들을 격려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방사업은 성공하였다. 그것은 주민들이 이룩한 동해안의 기적이었다. 그 결과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오도리 66번지는 '사방기념공원'이 되었다. 2007년 11월 7일 산림청과 경상북도, 포항시 주관으로 현지에서 '한국 사방 100주년 기념식'을 가졌으며, 동시에 '사방기념공원' 개원 행사를 가졌다.

"우리나라 임업자원의 84%가 박정희 대통령 재임중에 식재 육성된 것이다.…(중략) 박정희 대통령과 친교가 있었으며, 수차 내한한 바 있는 일본의 후쿠다 총리는 "한국이라고 하면 일제 때부터 벌거벗은 산을 연상했고, 한번 파괴된 산림은 그 복구가 곤란함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20년 미만의 짧은 기간에 완전히 녹화에 성공한 것은 고도 성장과 수출증대, 중화학공업 같은 경제적 업적보다 더 어렵고 값어치 있는 위업"이라고 말했다." 당시 주일대사(駐日大使)였던 김정렴(金正濂)의 이야기다.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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