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혼자 여행을 떠나는 랠스턴(제임스 프랑코). 2003년 어느 금요일 저녁. 이날도 그는 어김없이 자전거를 차에 싣고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다. 미국 유타주 블루존 캐니언. 정적이 끊긴 허허벌판. 토요일 아침 태고의 바위 사이를 뛰어다니며 그는 주말의 자유를 만끽한다. 암벽을 지나던 그는 떨어지는 바위와 함께 협곡으로 떨어진다. 늘 있을 수 있는 사고다. 그러나 이날은 치명적이다. 오른 팔이 떨어진 바위에 끼인 것이다. 아무리 해도 팔을 뺄 수가 없다.
그에게 있는 것은 중국산 싸구려 칼과 500㎖의 물 한 병, 그리고 캠코더뿐이다. 도와 달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들려오는 것은 메아리뿐이다. 아무에게도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기에 구하러 올 사람도 없다. 칼로 바위를 쪼고, 로프로 들어올리려고 하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127시간'은 등반 중 바위에 팔이 짓눌린 채 조난돼 127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아론 랠스턴의 기적 같은 생존기를 다루고 있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에서 추위와 절망감으로 고통받다가 결국 살기 위해 팔 하나를 자르고 탈출한다. 이후 극적으로 구조돼 병원에 옮겨진 그의 이야기는 CNN을 통해 미국 전역에 보도됐고, 국내에도 그 127시간의 기록을 담은 '6일간의 깨달음'이라는 책을 통해 그의 생존 실화가 알려졌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93분. 대부분이 바위에 끼인 한 남자만 나온다. 명명백백한 실화에 배경도 단조롭고, 스토리도 뻔하다. 그러나 영화는 주인공처럼 관객을 좌석에서 꼼짝달싹할 수 없도록 옥죄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은 여행을 준비하는 들뜬 주인공을 보여준다. 화면 분할로 바쁜 일상과 분주한 여행길을 보여준다. 속도감 넘치는 자전거 질주, 붉은 사막과 붉은 암벽들 사이를 뛰어다니는 주인공의 자유로움, 마음껏 고함을 지르는 주말의 여유를 만끽하게 한다. 음악도 뛰어나 주인공의 젊음과 역동을 잘 드러내 준다.
'쉘로우 그레이브' '트레인 스포팅' 등을 통해 감각적이고 스피디한 이미지, 강렬한 음악을 선보인 대니 보일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바위틈에서 코발트 빛 물 위로 다이빙하는 장면 등 화면도 아름답게 포착해 낸다.
문제는 협곡에 갇힌 이후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주인공처럼 카메라도 그 바위에 갇힌다. 여기에서 대니 보일은 화려한 이미지들을 걷어올린다. 주인공의 넋두리에 캠코더 화면을 교차 편집하고, 회상 장면을 곁들여 상영시간 내내 주인공의 절박한 상황을 전해준다.
물이 떨어져, 오줌을 대신 받아먹는 장면에선 시선을 물통 속에 두고, 하늘을 나는 까마귀, 비행기의 궤적을 통해 벗어나고 싶은 주인공의 심정을 그려주고, 파티에 참석해 마음껏 청량음료를 마시고 싶은 환상을 보여주는 등 리드미컬한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특히 처음 당황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후회하고 결국 절망에 빠지는 주인공의 심정을 잘 그려준다. 그때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더라면, 동료들에게 내 행선지를 말했더라면, 잘 드는 스위스 칼을 가져왔더라면…. 이 바위는 이제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방종을 보며, 올가미에 걸려들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태고, 아니 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지기 전부터 이 일은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어설프게 살고 있었는지, 또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왔는지를 서서히 깨닫는다.
모노드라마처럼 이야기를 끌어가는 제임스 프랑코의 연기도 뛰어나다. 살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하는 장면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뼈를 깎고 신경 줄을 자르는 것이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을 정도다. 그래서 고통의 대리 체험은 영화를 마치고 나오는 관객을 묘한 카타르시스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 또한 다시 바라보게 한다.
'127시간'은 뻔한 스토리지만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는, 의지 하나로 버틴 기적 같은 생존기다.
전작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2009년 아카데미 8개 부문을 수상했던 대니 보일은 '127시간'을 통해서도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15세 관람가.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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