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막막함이 물밀듯이

이 막막함이 달콤해지도록 나는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모른다. 헛된 예언이 쏟아지도록 나의 혀는 허공의 입술을 밤새도록 핥아댔다. 막막함이여 부디 멈추지 말고 나의 끝까지 오시길, 나의 온몸이 막막함으로 가득 채워져 투명해질 때까지 오고 또 오시길 나 간절히 원했다. 나는 이미 꺾이고 꺾였으니 물밀듯이 내 안으로 들어오시길. 그리하여 내게 남은 것은 나뿐이라는 것도 어쩌면 이미 낡아 버린 루머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깊이깊이 내 몸속에 새겨주시길. 내 피가 아직도 붉은지 열어보았던 날 뭉클뭉클 날 버린 마음들을 비로소 떠나보냈듯이 치욕을 담배 피우며 마음도 버리고 돌아선 길이 죽고 싶다는 말처럼 깊어지도록 밀려오시길. 막막함으로 밥 먹고 사는 날까지.

이승희

막막함을 이 시만큼 잘 표현한 건 아직 보지 못했다. 얼마나 막막했으면 그 막막함이 달콤해지도록 물고 빨았겠는가. 막막함으로 내 안이 가득 채워지길 원했겠는가. 지난가을 나도 막막했었다. 존재들에의 부정, 삶의 의미 없음, 적막한 식사, 검은 태양, 상실한 말, 그 와중에서도 이런 시 쓰지 못했다.

막막함은 최후이며 바닥이다. 바닥을 쳐야 솟아오른다는 진리 따위는 그 이후의 일이다. 막막함은 단지 막막함일 뿐이다. 그 어둡고 추운 곳에서 생이 일시 정지한 듯한 시각. 무엇이 왔던가.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막막함의 슬픈 어깨를 보았을 뿐이다.

그러니 막막함이여. 막막함으로 죽고 막막함으로 밥 먹고, 그렇게 막막함이 나인 듯 내가 막막함인 듯 살자. 살아가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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