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류재성의 미국책 읽기] 미국인들은 왜 복지를 혐오하는가

인종'정치 문제 얽힌 뜨거운 감자

#마틴 길렌스 저 (2000, 시카고대학 출판부)

미국인들은 '복지'를 혐오한다. 복지를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들에 대한 세금의 낭비'라고 인식한다. 복지는 개인의 책임과 자유를 중시하고 작은 정부를 선호하는 미국적 가치에 위배된다는 믿음 역시 강하다. 정부 예산이 삭감되어야 한다면 어떤 정부 지출이 삭감되어야 할 것이냐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2분의 1에게는 '빈곤 가정 지원'이라는 선택을 제시하고 나머지 2분의 1에게는 '복지예산'이라는 선택을 제시했는데, 빈곤 가정 지원 예산 삭감을 선택한 응답자는 8%에 불과한 반면 복지예산 삭감을 선택한 응답자는 39%에 달했다. 복지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혐오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어린이와 장애인,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정부 지원 정도가 미국인들이 인정하는 복지의 범위다.

미국인들의 복지 정책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게 부정적으로 변화한 것은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여기에는 백인 유권자 득표를 위한 공화당 전략과 선정적인 보도를 통한 독자 확보를 원했던 미디어의 이해관계가 작용했다. 공화당은 복지 수혜자를 흑인으로 등치시킴으로써 인종적인 편견을 가진 보수적 백인 유권자를 적극적으로 공략한다. 197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예비경선에서 레이건 후보는 8개의 이름과 30개의 주소, 4명의 사망한 참전용사 남편을 가지고 15만달러의 정부 복지 지원을 받은 시카고 여성에 대해 언급한다. 이 여성은 실재하지 않는 인물로 판명됐지만, 이러한 종류의 '복지 여왕'(welfare queen) 사례가 뉴욕 타임스 등의 유력 언론에 의해 지속적으로 보도된다. 복지 이외에도 범죄, 마약 등의 이슈가 흑인에 대한 인종적인 편견과 결합됨으로써 공화당의 백인 유권자 득표에 기여한다. 마틴 길렌스 프린스턴 대학 교수의 저서 『미국인들은 왜 복지를 혐오하는가』는 복지와 인종이 정치와 미디어에 의해 어떻게 연계되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명저다.

한국에서도 복지 논쟁이 뜨겁다. 유력 정치인들이 저마다의 복지 정책을 주장한다. 공정과 함께 복지가 정치적 담론의 주제가 된 건 우리 사회의 성숙을 보여주는 증표인 한편으로 우리가 만만치 않은 과제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준다. '누가 수혜자인가'의 문제와 '어떤 가치관으로 접근할 것인가'의 문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명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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