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퇴로 없는 사회

'아이유가 대세다.' 요즘 인터넷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다. 앳된 용모에 뛰어난 가창 실력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18세 고교생 가수 아이유는 한마디로 샛별이다. 그에게 쏟아지는 이 같은 관심은 소녀시대나 카라, 미쓰에이, 2NE1 등 걸그룹이 득세해온 K-POP 판도에 대한 식상함, 그리고 새로운 대중문화 아이콘에 대한 팬들의 호기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10, 20대는 그렇다쳐도 30, 40대의 삼촌 팬들까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열광하는 것은 여동생이나 조카 같은 친근한 이미지가 한몫했다.

최근 아이유는 대중 가수로는 드물게 공중파 방송 뉴스시간에 출연해 자신의 인기 비결을 '솔직함이 아닐까' 하고 고백했다. 본인이 말하는 솔직함과 대중이 받아들이는 솔직함은 차이가 있겠으나 무대 뒤에서 완벽하게 만들어진 상품이 아니라 약간의 촌스러우면서도 귀엽고 풋풋한, 그러면서 노래도 잘하는 그런 이미지가 대중의 눈높이에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비록 따라부르기 쉽잖은 노래들이지만 누구나 흥얼거리며 즐길 수 있기에 '대세'라는 말이 붙여진 것이 아닐까.

우리 정치판에 대세론이 등장한 것도 이미 꽤 시간이 흘렀다. '박근혜와 난쟁이들'이라고 불릴만큼 각종 여론조사에서 멀찌감치 앞서나가면서 나온 이야기다. 아이유와 박근혜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아이유가 모두에게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는 귀엽고 이쁜 대중문화 아이콘이라면 박 의원은 차기 정치권력을 좌우하게 될 매개이자 보수진영의 상징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아이유는 대중에게 자연스러운 반면 후보 박근혜는 부담스럽고 껄끄러운 대상이며 야권이 어떻게든 깎아내려야만 하는 표적인 셈이다. 노래와 정치의 속성이 가른 차이다.

정치가 노래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래든 정치든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유무형의 무대 위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런데 한쪽은 즐기는 대상인데 다른 쪽은 서로가 잘못됐다며 욕하고 넘어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독무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 정치는 늘 퇴로없는 전장이다. 내 편, 네 편 갈라 비꼬고 반대하고, 좋은 것은 독차지해야 잘하는 정치로 평가받는 식이라면 우리 사회는 늘 진흙탕이 될 수밖에 없다.

무상급식 문제로 한 치의 양보없이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서울시와 시의회가 단적인 예다. 어느 한쪽이 두 손 들고 투항하지 않는 한 임기 내내 사사건건 대립하고 충돌할 것이 뻔하다. 동남권 신공항,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을 놓고 벌이는 각 지자체의 사활을 건 싸움도 그렇고 현 시점에서 국민은 관심도 없는 개헌 문제를 들고 특위니 뭐니 하며 불때기에 바쁜 것도 모두 독선이다. 이는 정치를 특정 지역, 특정 세력의 독무대로 만드는 어리석은 일이다. 국민이 피곤해하고 염증을 낸다면 정치는 늘 삼류무대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풀어주기를 바라는 문제들을 큰 갈등없이 해결하고, 국정이라는 무대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바른 정치라면 우리 정치의 현주소는 각광받는 무대는커녕 지저분한 뒷골목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내일 2월 임시국회가 개회된다. 2개월여 만에 다시 문을 여는 국회지만 벌써부터 쟁점에 대한 현격한 입장 차이로 여야의 충돌과 대립이 불 보듯 뻔하다. 물가와 전세난, 구제역 등 펼쳐놓아야 할 보따리는 많은데 여야가 국정 주도권을 놓고 기싸움만 벌이다 모처럼만의 자리를 그르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한 발 양보하면 하늘과 바다가 열린다'는 말이 있다. 끝까지 자기가 맞다고 우기면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망가지지만 어느 쪽이라도 한 발짝 양보하면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작가 로버트 그린도 '권력의 법칙'에서 권력을 유지하려면 '자신만의 요새를 짓지 말라'고 강조했다. 요새는 고립을 자초해 그만큼 위험부담이 커진다. 30년 폭압정치로 일관한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진 것도 국민과 유리된 요새를 짓느라 고립되면서 빚어진 비극이다. 서로에게 명분을 주고 퇴로를 열어 놓는 성숙하고 솔직한 정치, 국민은 그런 대세를 바란다.

徐琮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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