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를 위한 격렬한 시위 끝에 30년 독재자 무바라크를 몰아낸 이집트의 시민혁명을 지켜보면서 '모래시계'라는 단어를 떠올려본다.
TV 드라마 최초로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루는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들여다보면서 '귀가시계'로 불렸을 만큼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모래시계'. 국민적 인기를 누렸던 '모래시계'는 드라마의 주제곡인 '백학'이란 음악 또한 유명세를 타게 만들었다.
'유혈의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이/ 낯선 땅에 쓰러져 백학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이따금 하네…/ 저들이 저 먼 시간에서 날아와서/ 울부짖는 것은/ 우리가 자주 슬픔에 겨워 하늘을 보며/ 침묵하기 때문이 아닐까…?'
구슬프고 장중한 이 남저음 가락은 드라마가 관철했던 1980년대의 암울한 시대상을 대변하면서 가슴 깊은 울림을 남겼다. 러시아 말 제목 '쥬라블리'로 '므녜 까짓쪄 빠러유 슈또 솔다띄'로 시작하는 노래 '백학'(Crane)은 원래 체첸공화국 유목민 전사(戰士) '지키트'의 죽음을 찬미하는 음유시이다.
그런데 체첸 민족이 각을 세워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 러시아의 가수 이오시프 코브존이 이것을 러시아어로 번안해 불렀으니 이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러시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체첸의 어느 반군 지도자가 지난달 러시아 모스크바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의 폭탄 테러를 자신이 지시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또한 지난해 4월 모스크바 지하철역에서 일어난 연쇄 자살폭탄 테러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체첸은 19세기 중반부터 러시아의 남진에 저항하다 끝내 강제합병을 당했다. 인종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러시아와는 다른 체첸인들은 오랜 세월 제국주의 러시아에 대한 독립투쟁을 벌이며 수많은 희생을 낳았다. '백학'이란 노래의 음률은 그런 비장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란 혹독한 세월을 살아온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되돌아보면 그게 전혀 낯선 일이 아닌 것도 같다. 무차별 대중을 상대로 한 무자비한 자살폭탄 테러. 이는 분명 저질러서는 안 될 폭거이자, 두말할 나위 없는 야만 행위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독립과 자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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