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요즘 제가 항상 밝게 웃고 다닌다며 비결이 뭐냐고 묻곤 합니다. 보톡스 주사를 맞았냐고 놀리는 친구도 있고요. 비결은 동화구연입니다. 저의 동화구연을 들어주는 아이들이 천연 보톡스나 다름없죠."
대구시립동부도서관과 다문화교실 등에서 2년째 동화구연과 동극(童劇)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증출(59·대구시 동구 효목1동) 씨는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인다. 흰 머리카락이 많아 모자를 쓰고 다니지만 얼굴엔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귀여운 아이들만 생각하면 그저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가 대학 입시를 치르고 난 후 뭔가 보람 있는 일을 찾던 중 동화구연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간호학을 전공했던 김 씨는 잠시 사회생활을 하다가 전업주부로 남매를 키운 후 1999년 방송통신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이후 2008년 동부도서관에서 중국어반과 한자반을 수강하던 중 '할머니·할아버지·어머니 동화구연반' 모집공고를 보고 1번으로 등록했다. 그때까지 '어머니 동화구연반'은 있어도 할머니·할아버지가 포함된 동화구연반 모집은 동부도서관이 처음이었다. 4개월간 동화구연을 익힌 김 씨는 이듬해 1월 동화구연 1급 자격증까지 획득했다.
"당시는 손자손녀가 없었는데 이젠 두 살배기 외손녀와 11개월 된 친손녀까지 생겼죠.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요즘처럼 행복한 적이 없습니다.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고 느낍니다."
김 씨가 즉석에서 구연할 수 있는 동화는 10여 편. 스토리를 암기하고 등장인물별로 목소리를 다르게 표현하며 율동을 섞어 한편의 동화를 모두 소화하는 데 1주일이 걸린다.
김 씨는 스토리 이해를 위해 간단한 캐릭터 그림과 소품도 직접 마련한다. 지금까지 김 씨의 동화구연을 청취한 어린이는 얼추 1천여 명에 이른다. 우리말이 서툰 결혼이주여성들을 상대로 하는 동화구연은 모녀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동화구연으로 인연이 된 캄보디아 출신 결혼이주여성 찬티(24)와 세 살배기 딸 다은이와의 인연은 잊을 수가 없어요. 대개 결혼이주여성의 자녀는 엄마로부터 제대로 된 우리말을 익힐 수 없는데 제가 엄마에게 먼저 동화구연을 들려준 다음 이를 다시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게 되면 아이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김 씨는 2009년 7월부터는 활동 범위를 넓혀 동극에도 출연한다. 동극은 동부도서관에서 동화구연을 함께 익힌 할머니 13명이 결성한 '책고리 할머니 봉사단'이 주축이 됐다. 첫 공연작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는 수십 차례의 공연을 가져 어린이 팬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문화적 접촉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소외계층 아이들을 찾아가는 이 공연은 지난해 제천에서 열린 전국 북스타트대회 폐막식에 초청돼 엄청난 호응을 얻었죠. 15분간의 공연을 마친 후 관람 어린이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어요."
책고리 할머니 봉사단은 또 지난해 대구시교육청 시청각실에서 '브레멘의 동물 음악대'를 각색한 '넌 할 수 있어'를 공연해 초등학교 입학생들로부터 역시 큰 호응을 끌어냈다. '넌 할 수 있어'는 각 유치원으로부터도 공연 요청이 쇄도했고, 다음달 2일 같은 장소에서 또 공연할 예정이다.
"동극은 그 자체가 어떤 시청각 교재보다 훌륭한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극이라고 할 수 있죠. 아이들은 10여 분 남짓한 동극을 보고난 후 감동에 휩싸이기도 하고 자신이 마치 동극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행동부터 달라진다고 학부모들이 말합니다."
김 씨는 아이들이 혼자서 책을 읽기보다는 동화구연이나 동극을 통하면 그 속에 있는 희망의 메시지와 교훈에 훨씬 빨리 반응하고 행동교정까지 이뤄진다고 귀띔했다. 김증출 씨의 동화구연은 세대 간 따뜻한 정을 흐르게 하는 또 다른 소통 창구가 되고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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