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이 적격은 아니지만 일단 분위기는 비슷하기에 내놓아 본다. 실상은 이렇다. '단아하다. 청순하다. 곱다. 아름답다. 착하다'로만 보여지던 한 사람이 요즘 '섹시하다'란 한 단어로 자신의 모든 이미지를 상쇄시켰다. 그 주인공은 한지민이다. 그녀의 팜므파탈 변신에 대중들은 깜짝 놀랐고, 이는 바로 인터넷으로 옮아와 '섹시종결자' '반전몸매' '팜므파탈 한지민' 등의 검색어를 토해냈다. 결과는 검색어 1위 등극. 그녀의 이런 변신에 시발점이 된 영화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이하 조선명탐정)은 개봉 3주만에 전국 관객 350만 명을 동원하는 등 폭발적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일단 감사하죠.(웃음) 지금껏 제가 안 했던 캐릭터라 많은 분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는데, 다행히 영화 팬들에게는 크게 다가간 것 같아요. 감독님과 상의를 거쳐서 나름 많이 고민하고 고생해서 만들어 낸 캐릭터인데 우선 그런 것들이 잘 표현된 것 같아 보람이 있어요."
'조선명탐정'에서 한지민은 한객주 역을 맡았다. 극중 탐정으로 나오는 김명민, 오달수를 홀려야만 하는 임무를 가진 탓에 그녀의 섹시한 이미지는 반드시 필요했다. 다시 곱씹게 되지만 한지민의 지난 작품들, 그리고 그녀가 가진 분위기는 절대 이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이번 변신은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김석윤 감독님이 반전을 기대해 캐스팅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사극의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나 저의 단아한 이미지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고 싶었다는 것이죠. 저 역시 시나리오를 보고서 한객주라는 캐릭터가 참 신비스럽게 느껴져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싸!'를 외쳤죠. 속으로 '이제야 주인을 찾았다'할 만큼 제게는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그런데 한지민의 필모그라피를 살펴보면 사극이 많은 편에 속한다.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이산'과 '대장금'을 비롯해서 '경성스캔들'이나 영화 '청연'은 조선 개화기의 시대물이다. 사극의 선입견을 드러내고자 하는 면에서는 잘 안 맞지 않나란 생각도 들었다.
"저와 사극의 조화는 한마디로 '안전빵?!'아닐까요?(웃음) 다른 배우들이 체구도 많이 크고 서구적으로 생긴 분들이 많다 보니 제가 작고 나름 동양적으로 생긴 것에 감독님들이 매력을 느끼신 것 같아요. 하지만 저도 현대극에 잘 어울릴 자신 있어요. 요즘 분위기 내려고 염색까지 했다니까요."(웃음)
사실 배우라면 변신에 대한 걱정은 일찌감치 흐르는 강물에 떠내려 보내야 한다. 시종일관 자기 이미지를 가지고 가는 것이 틀리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작품, 어떤 캐릭터를 맡더라도 그것을 훌륭히 소화해내는 배우가 진정한 연기자라서다. 그런 면에서 한지민의 이번 도전은 의미 있는 첫발이다.
"대중들은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에 대해 대리만족을 하게 되죠. 특히 여주인공에 대해서는 철없고, 마냥 당하기만 해도 나중에 복수를 하거나 성공하는 이야기를 통해 동질감을 얻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이번 영화에서 악의 기질을 다분히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요. 한지민 하면 한없이 착할 것 같다고들 하시는데, 극중 제 모습이 색다른 맛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곤조곤 영화와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설명해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푹 빠져버렸다. 목소리와 눈빛, 그리고 에너지 넘치는 밝은 기운은 마주 앉은 이를 선한 양이 되게 하는 묘한 힘을 그녀는 가지고 있었다. 한지민은 2009년 '행복한 밥벌이'란 책을 통해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해 진솔한 속내를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몸이 아프고 힘든 직업을 갖고 있어도 일하는 것이 행복하다'라고 자못 철학적 의미의 소신을 밝혔다.
"촬영을 마치고 새벽에 들어가다 청소부 아저씨를 뵀어요. 그냥 더러운 것을 치운다는 것 때문에 불쌍하다란 느낌을 받았는데, 그때 함께 있던 언니가 '저렇게 열심히 자부심 가지고 사는 분이 불쌍한 게 아니라, 사지가 멀쩡한데도 일 안 하는 사람이 불쌍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게는 생각의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난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행복해 하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고, 그 이후로 '불쌍하다'란 말을 잘 못하게 됐어요."
그녀와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맑은 영혼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면서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로 궁금증이 옮겨갔고, 이내 질문을 던졌다. "언제부터 그렇게 맑았나?"(나름 '시크릿가든'의 주원이 말투를 따라한 것이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투로 묻지 않았다.)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저, 이렇게 3대가 같이 살고 있다는 점, 대가족의 일원이라는 것이 제게는 큰 힘이에요. 학창시절에 자기소개서에 장점을 적으라고 하기에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사는 것이라고 적었을 정도니까요. 서로 걱정하고 사랑하고 나누고 하는 것들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 같아요."
이런 얘기를 듣고 있을 어르신들이라면 아마 '내 며느리 삼고 싶다'란 생각 있으실법하다. 이른바 가정교육을 잘 받고 자란 규수란 표현이 딱 어울릴 한지민이기에 여러 곳에서 '선 자리' 의뢰가 들어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또 그녀가 바라는 남편감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의외로 부모님께서 제게 선이나 '누구 만나볼래' 하는 얘기는 잘 안하세요. 다만 제 결혼식장에서 '예쁘게 멋지게 보이고 싶다'고는 하시더라고요.(웃음) 제 이상형은 어르신에게 예의바르고, 가족들과 잘 어울리고, 유쾌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특히 그 사람 때문에 제가 많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한지민은 올해 딱 서른 줄에 접어들었다. 데뷔한 지도 어느덧 9년차가 됐다. 어떤 삶을 살고 싶고, 또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을까.
"한지민은 한지민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해요. 뚜렷한 연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순간 제가 느낀 느낌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하려는 노력을 하려고 해요. 그게 잘 맞아 떨어졌을 때가 가장 후련하거든요. 그런 순간이 잦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더불어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최선에 대한 몫은 제 것이니까 그 몫을 잘 챙긴다면 저도 행복해지겠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장주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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