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향인사] "감사원은 제4부…독립기관으로 운영돼야" 남일호 감사원 감사위원

감사원은 헌법에 따라 국가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 감사와 행정기관·공무원의 직무 감찰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감사기관이다. 이 가운데 실질적 감사의 진행은 사무총장이 이끄는 사무처가 맡고, 감사 결과의 의결은 감사위원회의에서 이뤄진다. 사무총장과 감사위원은 모두 차관급이지만 감사원장을 포함한 감사위원 7명은 4년의 임기가 보장돼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남일호(58) 위원은 지난해 1월 감사위원에 취임했다. 1983년 감사원 근무를 시작한 지 27년 만에 원내 최고위직에 오른 셈이다.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인 개헌과 관련, 감사원을 대통령 소속에서 국회로 이관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데 대해 먼저 물었더니 소신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감사원은 3부 어디 소속이 아니라 제4부가 돼야 합니다. 선진국 중에도 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캐나다 등이 독립기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행정부 소속인 현재 감사원의 위상으로는 입법·사법부에 대한 감사가 회계감사 위주로 치러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남 감사위원은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직후인 1979년 행시 23회에 합격, 체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첫 근무지는 경주전신전화국이었다. 하지만 1983년 감사원이 인적 자원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정부 각 부처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영입하면서 감사원으로 '스카우트'됐다.

"우체국 관련 예산을 담당하는 부서에 오래 근무하다 보니 감사원 감사를 자주 받았죠. 자연스레 감사원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고, 국정 전반을 살펴보는 감사 업무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는 것도 좋지만 정부기관의 비효율과 예산 낭비를 막는 게 나라 발전에 더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정통 감사인의 길을 걸어왔다. 총무과장, 공보관, 특별조사국장, 사회·복지감사국장, 전략감사본부장, 기획홍보관리실장, 감사교육원장, 제2사무차장 등 주요 보직을 대부분 거쳤다. 워낙 풍부한 실무경험을 갖춘 덕분에 감사원 내에선 '리베로'로 통한다.

'안동 양반'다운 온화한 리더십으로 직원 다면평가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하고, 같이 일하고 싶은 선배로 꼽히는 그이지만 일처리는 매섭다는 평이다. 사무총장 재임 때는 공기업 선진화 등 공공부문 개혁을 위한 굵직한 감사 사항들을 무난히 처리했고, 국장 시절에는 황우석 교수 사건, 대입수능시험 부정 등 민감한 현안 감사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돌이켜보면 감사원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예전에는 국민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 세금을 제대로 썼는지를 살펴보는 회계 감사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고도의 판단력을 요구하는 정책 감사 위주로 업무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공무원이 업무를 소신껏 처리하다 발생한 실수에 대해서는 징계나 처벌을 면하게 해 주는 '적극 행정 면책제도'도 도입하게 된 것이지요."

남 감사위원은 영양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안동 태생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영양초교를 졸업한 뒤 안동에서 안동중·안동고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경찰관이셨던 선친께서 영양에서 오래 근무를 하셔서 유년 시절은 영양에서 보냈지요. 그런데 조부께서는 영덕 영해면 출신인 덕분에 안동, 영양, 영덕 분들이 모임 모두에 나오라고 해 가끔 난처할 때가 있습니다. 허허허."

198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기도 한 그는 '무괴아심'(無愧我心)과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마음에 부끄러운 일은 하지 마라' '자기 분수에 만족하며 다른 데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쪽 같았던 영남 선비 기질의 본향(本鄕) 출신다웠다.

"다 지난 일이지만 지난 2006년 다른 정부 부처의 차관급 자리에 발탁될 뻔했습니다. 제안 자체는 분명 큰 영광이었지만 제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사양했습니다. 감사원을 떠나는 날까지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하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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