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육상은 영국 상류계급의 내기 경주에서 출발했다.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흑인들은 육상경기는 물론 다른 스포츠에도 참가하기 어려웠다. 올림픽 육상에서 최초의 흑인 입상자는 1904년 3회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지금은 없어진 제자리 높이뛰기(스탠딩 하이 점프)에서 2위를 차지한 미국의 스태들러이다. 오늘날 육상의 달리기는 흑인들이 거의 석권하고 있다. 흑인이 육상 등 각종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을 때 '흑인은 육체기능만 발달하고 정신은 미개한 족속'이라는 의식이 지배적이었으나 이제 이러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흑인 육상의 천재적 능력을 이루는 근간에는 인종차별과 가난 등 갖가지 역경이 자리 잡고 있다. 흑인들은 고통 속에서 살아남은 끈질긴 정신력의 소유자들로, 타고난 체질도 뛰어나기 때문에 잘 달릴 수밖에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흑인 단거리 유전자의 대표적인 선수인 제시 오언스(Jesse Owens)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에서 올림픽 사상 최초로 단거리(100m, 200m, 400m 계주, 멀리뛰기) 4관왕에 올랐다. 베를린올림픽을 통해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선전하려던 히틀러의 코는 납작해졌다. 오언스는 "1830년대 내 조상은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었던 미국 땅에 노예로 팔려왔다. 나는 1936년 8월, 다른 민족이 모두 자신과 아리안족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히틀러와 싸워 이겼다"고 주장하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였다. 그는 단순하게 저항정신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이론을 육상경기의 훈련과정에 접목하면서 흑인의 우수성을 증명하였다.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항상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달렸으며, 추진력을 얻기 위해 팔을 휘두르되, 절대로 가슴선 이상까지 팔을 올리지 않았다. 팔을 과도하게 흔들면 신체의 균형이 깨져 몸이 흔들리게 되고 결국 직선코스로 달리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적용한 것이다. 이론과 실제를 조화시킨 오언스는 결국 흑인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편견을 모두 극복한 것이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육상경기에서는 흑인 인권탄압에 대한 시위가 노골적으로 표출되었다. 200m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미국의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는 시상대에서 운동화를 신지 않고 검은 양말 차림으로 목에는 검은 스카프를 둘렀다. 미국 국가가 울리자 고개를 푹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한 손을 높게 쳐들면서 미국 내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침묵시위를 벌였다. 흑인인권운동 지도자 킹 목사가 암살된 지 여섯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두 선수는 흑인들의 가난을 대변하기 위해서 운동화를 신지 않았고, 흑인들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 목에 검은 스카프를 둘렀다. 스미스는 미국 내 흑인들의 힘을 상징하는 오른손을, 칼로스는 흑인들의 단결을 호소하는 왼손을 치켜든 것이다. IOC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폭력적 행위'로 간주하면서 두 선수의 메달을 박탈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육상경기에서 보여준 메시지는 미국 사회를 휩쓴 흑인인권운동 '블랙파워'(Black Power)의 상징이 되었다.
김기진 계명대 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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