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장애인학교 설원형 군·장선형 씨의 특별한 졸업식

"나보다 힘든 사람 위해 갈거예요"

17일 대구광명학교를 졸업한 설원형(왼쪽) 군과 대구보건학교를 졸업한 장선형 씨가 졸업장과 축하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7일 대구광명학교를 졸업한 설원형(왼쪽) 군과 대구보건학교를 졸업한 장선형 씨가 졸업장과 축하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우리에겐 꿈이 있어요. 우리보다 더 힘든 이를 위한 길을 갈 거예요."

17일 대구 장애인학교 두 곳에서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시각 장애를 딛고 대학에 진학하고, 39세의 나이로 뇌병변을 극복하며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낸 두 명의 학생이 의미 있는 졸업식을 치렀다.

◆'강영우 박사, 스티비 원더'를 꿈꾸며

"학교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앞을 보지 못해도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빛을 발견했습니다."

17일 오전 10시 30분 대구 남구 대명동의 대구광명학교(시각장애인학교) 대강당. 졸업생을 대표해 '답사'를 하는 설원형(19) 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원형이가 손끝으로 교탁 위에 놓인 점자를 읽어 내려가자 이를 지켜보던 담임 선생님의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원형이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13년간 정을 붙였던 학교를 떠나는 것이 못내 섭섭한 모양이었다.

원형이는 수시모집으로 나사렛대 기독교학부에 당당히 합격했다. 3월부터 충남 천안에 있는 대학 기숙사에서 혼자 생활해야 하는데도 두렵지 않다. "유치원에 입학해서 지금까지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적이 없었어요. 선생님과 부모님이 항상 곁에서 도와주셨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 해보려고요."

원형이의 꿈은 '목사'다. 기독교학부에 진학한 것도 장애 때문에 좌절하는 이들을 음악과 신앙으로 보듬고 싶어서다. 갑자기 시각 장애가 찾아와 힘들어하는 여동생 수경이(16)에게 점자를 가르쳐 준 것도 원형이였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는 물론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다.

이날 개근상과 대외상 등 상장 3개를 받은 원형이의 가슴엔 큰 꿈이 있다. "강영우(전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박사도, 세계적인 가수 스티비 원더도 모두 시각장애인이잖아요. 저도 목사님이 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20년 늦게 받은 졸업장

같은 시각 대구보건학교(지체장애인 교육학교)에서도 졸업식이 열렸다. "고등부 3학년 장선형!"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장선형(39·여) 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20년 늦게 받아든 졸업장은 그에게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뇌병변을 앓는 장 씨(지체장애 1급)는 서른이 넘어서야 학교 문턱을 밟았다. 2004년 야간학교에 다니며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치렀고 2005년 보건학교 중등부 과정에 입학할 수 있게 됐다. 공부를 향한 열망은 장애를 넘어섰다. 6년간 몸이 아픈 날을 제외하고 매일 학교에 출석, 도장을 찍은 그는 늘 반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한국 지리와 사회 과목은 나이가 20살 어린 반 친구들에게 직접 설명해 주기도 했다.

장 씨의 이런 학교 생활은 든든한 버팀목인 남편 강덕원(40) 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7년 결혼식을 올린 이들 부부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남편 강 씨도 편마비를 앓는 장애인이지만 공부하는 아내를 위해 집안일은 물론 매일 하굣길에 마중을 왔다. 장 씨는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대구 달서구 신당동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 30분 스쿨버스를 타면 체력이 바닥난다. "공부를 하다 갑자기 머리 한 쪽에 쥐가 나서 집에 일찍 돌아간 적도 있어요.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오랜 시간 차를 타다 보니 몸 상태가 나빠졌어요."

그래도 장 씨에겐 꿈이 있다. 야간 학교에서 장애를 안고 공부하는 이들의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다. "저처럼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어요."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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