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한 모녀가 간디문화센터를 방문했다. 군위 소보에 사는 같은 캄보디아인 집을 방문했다가 친구의 일터가 보고 싶어 들렀다고 했다. 이주민 여성들이 장거리 이동을 하려면 현실적으로 여러 제약이 따르게 마련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린 딸과 단둘이서 먼 곳에서 왔다고 해서 우선은 놀랐다.
센터에서 내내 그녀는 눈을 바로 마주치지 못하는 등 불안한 모습만 보여 주고 돌아갔다. 지난 설 연휴 때 전남 순창에서 캄보디아 아내가 잠자는 남편의 성기를 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주민 여성과 관련된 불행한 사건이 또 발생했구나 생각하던 중 캄보디아 여성이라는 말에 문득 그녀가 뇌리를 스쳤다. 사건 발생 며칠 후에 담당 형사가 소보 친구 집으로 참고인 조사에 응해달라는 전화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피의자는 다름 아닌 그녀였다. 얼마나 미웠으면 칼로 남편의 중요한 부분을 자르고자 했을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싶었다. 정신감정 결과 조울증과 망상장애를 앓고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지금 구속 상태이다.
한편 작년 7월에는 시집온 지 일주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당한 20살 베트남 여성 사건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했었다. 피의자 남편은 2005년부터 무려 57차례나 치료를 받아 온 정신질환자로 밝혀졌다. 이 사건의 파장이 의외로 커지자 베트남의 반한(反韓) 감정 확산을 우려한 정부가 긴급 대책을 내놓기까지 했다.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이유로 한국에 시집온 두 이주민 여성이 강력범죄의 피의자와 피해자로 생을 살거나 생을 마감당했다.
농촌지역에서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가진 지 4년째 접어든다. 농촌으로 시집온 20대 초반의 젊은 이주민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에게 맞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겠다 싶어 고용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기도 하고,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으로 커피전문점을 군위 읍내에 오픈하여 운영해 보고도 있다.
이주민 여성의 인생 역정은 알면 알수록 기가 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과거 우리 누이의 모습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식구 많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우리 누이들은 어린 나이에 가족 부양의 책임을 지고 사우디로, 독일로 가야만 했었다. 이역만리 해외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과 고통을 어찌 미루어 짐작하겠느냐마는 어느새 우리는 그런 누이를 새까맣게 잊고 코리안 드림을 꾸고 이 땅에 온 이주민 여성들의 가해자가 되어 있다.
다문화사회에 접어든 사실을 농촌만큼 실감하는 곳은 드물다. 결혼하는 신부의 반 이상은 이주민 여성이요, 동네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나면 십중팔구 다문화 2세가 태어난 소식이다. 어디 그뿐이랴, 다문화 2세가 유치원을 거의 채웠고, 초등학교 입학생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앞으로 5년, 길어야 10년 후에는 다문화가정이 없으면 초'중'고 농촌 학교는 모두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마을 청년회, 부녀회 심지어 노인회까지 다문화가족이 자리를 꿰어차 이들의 지지 없이는 선출직 공직자로 나서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시혜적, 일회적, 전시행정적으로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높은 사람들이 순서대로 나와 일장연설을 한 후 단체사진 찍고, 선물 주어 보내는 방식으로 다문화사업을 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젊은 이주민 여성들은 젊은 한국 여성과 다를 바가 없다. 한국 여성들이 기피하는 일인데 이들이 좋아할 리 없다. 그런데 세상 물정 많이 알면 도망간다고 가정에 가둬 놓으려고만 한다. 한국어 사용을 강요하고, 한국 문화만 빨리 익히라고 야단이다. 너무 잘해주면 기어오른다고 간혹 쓰는 폭력도 정당화한다. 어린 나이에 농촌에서 아내, 며느리, 엄마로서 보육, 가사, 농사일까지 일인다역의 중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이 바로 현대판 우리 누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비웃고, 구박하고, 학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문화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다문화를 학습해야 한다. 문화는 차별이 아니라 단지 다를 뿐이라는 인식 변화 없이는 안타까운 범죄현장에서 만나는 이주민 여성들이 줄어들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문창식(간디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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