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아내의 독립선언

아내의 독립선언

이종문

아침 식탁에 오른 등 푸른 꽁치 중에 어느 한 마리를 내가 뜯기 시작하면 언제나 그 놈을 함께 뜯어 먹곤 하던 아내,

그 아내가 돌연히 오늘 독립선언을 했다.

내가 한 놈을 골라 이미 뜯고 있는데도 그녀가 다른 한 놈을 골라 잡은 것이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잘 알지 못한다는 말은 슬프지만 옳다. 일본 영화 '그 남자가 아내에게'는 아내에게 무관심한 남편에 대한 이야기다. 사진작가인 주인공 남자는 "피사체에 관심이 많을수록 좋은 사진이 된다"는 주장을 펼치지만 실상 그에게 아내는 더 이상 흥미로운 피사체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성심을 다하던 아내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마침내 혼자가 되었을 때, 남편은 비로소 안타까이 지난 사랑을 뒤돌아보는 것인데.

그렇게 뭔가를 깨달았을 때는 항상 늦은 법이다. 남편 곁에서 말없이 자리를 지켜주는 그다지 큰 매력 없이 보이는 아내들. 그들도 한때는 삶을 고민하던 청춘이었고, 자신의 뜨거운 정열을 세계에 펼쳐 보이고 싶었던 영혼이었다는 것.

그런 아내들이 남몰래 외로웠던 거 잘 몰랐지. 때때로 자기 몫의 아픔으로 건너야 할 강물이 있다는 걸 잘 몰랐지. 가장 가까운 남편마저 무심하여 짐짓 그걸 좀 알아채라고 '독립선언'을 한 것. 아둔한 우리의 남편들은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는 걸 아예 듣지 않기에, 덥석 식탁 위의 등 푸른 꽁치 한 놈을 냅다 골라잡은 것. 유쾌한 '독립선언'이었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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