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선수단이 묵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 리젠시호텔 '9063호'는 밤이 되면 바빠지는 곳이다. 훈련을 마친 선수들의 '예약'이 끊이지 않는 이 방은 허삼영(40) 전력분석원이 묵고 있다. 투수들은 이곳에서 투구자세를 교정하고, 때론 심리 상담을 받는다.
허 분석원의 일은 투수들의 투구동작을 녹화해 투구 밸런스, 릴리스 포인트 등을 분석, 코칭스태프에 제공하는 것이다. 경기 때는 투수가 던진 공 하나를 빠짐없이 기록해 투구패턴을 찾는다. 그의 기록지에는 볼 카운트서부터 구질, 구속, 볼 카운트에 따른 구종선택 등이 빼곡하게 쓰여 있다. 보통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투수들의 작은 버릇도 그를 피해갈 수 없다. 투수의 사소한 버릇은 상대 분석원에 노출돼 결정적인 약점이 된다. 가령 직구를 던질 때와 변화구를 던질 때 글러브의 위치, 글러브를 놓는 각도 등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타자가 구질을 파악해 대처하기 때문에 승패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선수들이 전지훈련지에서 밤마다 허 분석원의 방을 두드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이 던진 공이 좋았는지, 혹시 결점은 없는지 분석한 자료를 보며 조언을 듣는다. 아무래도 칭찬보다는 꾸중을 들을 때가 잦다.
허 분석원이 찾아낸 약점이 컴퓨터 모니터에 재생됐을 때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는 선수들도 있다. 그런 버릇이 없다고 잡아떼던 선수도 화면을 보면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린다.
선수들의 성향을 파악해 그에 맞는 조언을 해주다 보니 선수들은 코칭스태프보다 그를 더 편하게 여긴다. 그는 투수 출신이라 투수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허 분석원은 "선수들의 모든 점을 분석하는 일을 하다 보니 선수들이 많이 따른다"며 "직접적인 지도는 할 수 없지만 몰래 기술적 조언을 조금씩 하고 있다"고 했다.
허 분석원은 대구상고(현 상원고)시절 투수로 활약했고 1991년 삼성의 유니폼을 입었다. 5년간 선수생활을 한 뒤 1996년 은퇴했고 그 후 지금 하는 일을 시작했다. 올해로 16년째인 그는 8개 구단 중 최장수 분석원이다. 그동안 배영수, 안지만, 권오준, 오승환 등 유명 선수들도 전지훈련 때 그의 방을 다녀갔고 지금도 틈만 나면 들른다. 지난해 캠프 때는 차우찬이 공을 던지는 순간, 고개를 떨어뜨리는 버릇을 찾아 조언해줬다. 공을 제대로 보지 못하니 제구력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차우찬은 지난해 생애 첫 10승을 달성하며 승률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허 분석원은 "올해 삼성의 투수력이 지난해와 비슷해 보이는데, 부상과 부진을 겪은 오승환과 윤성환이 제 몫을 한다면 좀 더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철저히 분석해도 결국 공은 투수의 손안에 있으니 결과를 예측하는 건 어리석은 일 같다"고 했다. 오키나와에서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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