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 양산 영축산

독수리 비상할 듯 기운찬 산세…국보 종찰 통도사 깃들여

영취산, 영축산, 축서산, 취서산….

한 개의 산이 이렇게 네 개의 이름으로 혼동되는 곳도 드물 것이다. 이런 혼란의 중심에 '축'(鷲)자가 있다. 일반 옥편에는 '독수리 취'로 표기하고 있지만 불교에서는 '독수리 축'으로 읽는다. 동자이음(同字異音)의 현상으로 도장(道場)이 도량으로 보제(菩提)가 보리로 쓰이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취'와 '축'의 오해는 이렇듯 다양한 이름들을 만들어 냈고 지도나 표지판에 섞이면서 많은 혼란을 불러왔다. 2001년 양산시는 향토사학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지명위원회를 열어 산 이름을 영축산으로 통일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5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건립된 사찰이다. 자장은 당시 최고 엘리트였던 도당(渡唐) 유학파. 당연히 당나라 황실에서의 대우도 남달랐다. 대사의 귀국 길에 황제는 율사를 따로 불러 부처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金袈裟), 대장경 400권을 하사했다. 신라에서 불법을 진흥시키라는 당부와 함께.

대사는 양산에 통도사를 세우고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했던 인도 산의 이름을 따 '영축산(靈鷲山)'으로 하였다. '신령스런 독수리'라는 의미의 영축산. 왜 독수리였을까. 인도 불교에서 독수리는 사리불(舍利佛)로 불릴 만큼 영적인 동물로 존중 받고 있기 때문이다.

◆통도팔경 중 으뜸, 통도사 입구 소나무길=영축산 산행은 통도사 매표소에서부터 시작된다. 차가 절 안쪽까지 들어가긴 하지만 가능하면 매표소 입구에 차를 대고 오르는 것이 좋다. 통도사의 명물 소나무 숲길 때문이다. 무풍교에서 청류교에 이르는 1km 구간에 늘어선 송림은 '무풍한송'(無風寒松)으로 불리며 통도팔경 중 으뜸으로 친다. 이름처럼 서늘한 기운이 도는 소나무 숲을 10분쯤 지나면 대가람 통도사의 일주문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승속(僧俗)의 경계라는 일주문. 이곳 현판은 대원군의 친필이라고 전한다.

580칸에 이르는 대사찰임에도 전체적 느낌은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배치된 건물들은 사람을 위압하지 않는다.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본전인 대웅전에 들어서도 3보사찰의 종찰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다.

극락보전 앞마당에 들어서면 퇴색한 추녀선 너머로 영축산이 한눈에 펼쳐진다. 불끈 튀어나온 근육질의 스카이라인에서 한눈에도 독수리의 힘찬 기상이 느껴진다. 시살등에서 치켜 올라간 날개는 함박재-1071봉을 거쳐 정상에서 한껏 솟아오르다 가천 방향으로 고도를 낮추며 날개를 접었다.

경내를 빠져나와 안양계곡을 끼고 오른다. 20분쯤 가면 백운암으로 오르는 2코스 등산로가 나온다. 극락암을 지나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1시간쯤 오른다. 평균 경사가 30, 40도는 돼 보인다. 벌써 종아리는 묵직해지고 호흡은 가빠온다.

잠시 후 고즈넉한 암자가 일행을 맞는다. 백운암은 영축산 암자 중에 가장 높은 곳(966m)에 위치해 있다. 이곳 북소리(白雲鳴鼓)도 통도8경 중의 하나다. 차가운 생수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등산로에 또 몸을 싣는다. 날카로운 사면을 따라 산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함박재에 이르러 산은 겨우 안부(鞍部)를 펼쳐 놓았다. 이제야 겨우 숨을 돌린다. 함박재는 배내골과 통도사를 연결하는 교통로. 함박등에 올라서니 배내골 청수골, 신불산휴양림이 연무 속에서 아늑하다. 바로 밑에 있는 시살등은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최후의 항전을 펼친 곳이다. 격전 중에 화살을 빗발처럼 날렸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

◆영남알프스 스카이라인 한눈에 펼쳐져=함박등에 올라서면 이제 정상 능선길의 연속. 우수(雨水)를 지난 철이지만 아직 정상엔 잔설이 깊고 나뭇가지를 스쳐오는 바람도 무척 차다. 찬바람을 뚫고 북서쪽에서는 재약-천황봉-능동산과 그 너머로 배내재-상운산-가지산이 산너울을 일렁인다.

함박등에서 1071봉으로 연결되는 500m 구간은 보기에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한 릿지구간. 톱날처럼 뾰족 선 봉우리들이 아슬아슬하게 긴장감을 자아낸다. 봄가을엔 강심장들이 이 능선 위에서 곡예를 즐기기도 하지만 빙판이 깔린 겨울철엔 반드시 우회해야 한다.

조망하면 영남알프스 쪽 풍경이 손꼽히지만 양산 쪽 마을 풍경도 볼만하다. 통도판타지아의 거대한 놀이기구도 여기서는 미니어처 장난감처럼 보이고 양산 들을 적시는 저수지도 컵 하나에 담길 듯 앙증맞다. 1071봉에서 잠시 휴식하고 정상을 향해 나선다. 봉우리를 내려서자마자 신불능선으로 연결되는 등산로와 만난다. 가을 내내 은빛물결로 넘실댔을 평원엔 이제 몇 점 잔설만이 평원을 물들인다. 이 평원 한쪽에 쌓인 수많은 돌들은 단조산성(丹照山城)의 잔해들이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 주둔했던 관군들이 왜적 침입 때 가천들까지 나가 전쟁을 치렀다 한다. 영축산 절벽을 이용해 쌓은 이 성은 양산, 울산, 밀양을 방어하는 유용한 진지였다. 국방의 요새로서뿐 아니고 경치도 일품이다. 석양에 물든 산성 정취는 '단성낙조'(丹城落照)라 하여 예부터 통도팔경 중 하나다.

◆가을철 소란 피해 겨울에 한적하게 올라볼 만=통도사를 나선지 3시간. 드디어 영축산 정상에 올랐다. 이제까지 영축산은 신불-간월-영축을 연결하는 종주라인의 일부로만 인식해왔다. 또한 억새의 후광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겨울철 억새의 소란에서 벗어나 한적하게 오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겨울철 산에서 일몰은 평지보다 훨씬 빠르다. 서둘러 하산 길로 들어선다. 6부 능선쯤 이르자 소나무 숲이 펼쳐졌다. 그렇고 그런 송림이 아니고 아름드리 낙락장송이 도열해 있는 울창한 숲이다. 상큼한 솔 향이 코를 자극하고 발밑에 부드러운 쿠션이 걸음을 가볍게 한다. 소나무 숲의 상쾌한 트레킹은 통도사 입구까지 계속된다. 굳이 애국가를 빌리지 않아도 소나무는 우리민족 정서와 잘 맞아떨어진다. 숲에서 우리는 무언의 정서를 교감하고 청량감, 시원한 바람 그 이상의 것을 느낀다.

송림을 지나 다시 통도사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소나무 숲이 일행을 맞는다. 낮에 햇볕을 털어내던 솔잎들은 이젠 잎새마다 붉은 노을을 맞아들인다. 이런 걸 송입송출(松入松出)이라고 하나? 등산로 입구와 하산 길이 모두 소나무로 맞아떨어진 건 기분 좋은 우연이다.

◆교통=경부고속도를 타고 통도사IC에서 내려 표지판을 보고 진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약 5분 거리.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동대구고속터미널에서 부산행 일반고속버스(금호, 천일)를 타면 된다.

◆맛집=늘시원냉면(055-383-5577)=양산시 순지리, 한식 냉면. 경도갈비(055-382-8051)=양산시 순지리, 불고기 갈비. 다인카페(055-384-0312)=양산시 지산리, 전통찻집. 청수골산장(055-383-1286)=양산시 지산리, 해물요리.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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