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뮤직토크](15)-빌리 홀리데이(하)

포플러 가지에 매달린 이상한 과일

빌리 홀리데이의 대표곡이라면 '아임 어 풀 투 원트 유'(I'm A Fool To Want You)이다. 국내 광고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된 이 곡은 흡사 빌리 홀리데이의 인생여정을 말해주는 듯하다. 몇 번의 결혼 실패로 보통의 행복조차 경험하지 못한 빌리 홀리데이는 차안(此岸)에서의 마지막 사랑을 노래하듯 이 곡을 녹음했다. 빌리 홀리데이의 마지막 명연은 그녀뿐만 아니라 재즈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곡으로 남게 된다.

블루스와 사랑의 화신처럼 애절함을 노래했던 그녀지만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곡은 사랑타령과는 거리가 먼 곡이었다. 1939년 1월, 뉴욕에서 유일했던 인종개방클럽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그녀는 미국 현대사의 수치를 담은 노래를 초연한다.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노래했지만 클럽을 메운 관객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백인들은 자리에 앉아있기 민망할 정도였다.

'남부의 따뜻한 풍경 속에/ 눈이 튀어나오고 입이 뒤틀려/ 달콤하고 청아한 목련향기와/ 코를 자극하는 살이 타는 냄새/ 포플러 가지에 매달린 검은 몸뚱이'라고 노래하는 '스트레인지 프루트'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의해 고문으로 죽어간 흑인을 나무에 매달린 이상한 과일로 비유한 노래다.

현장 기록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은 유태계 백인 '애벌 미로폴'(루이스 앨런이라는 필명으로 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곡은 빌리 홀리데이에 의해 생명을 얻게 된다. 많은 사람에 의해 불려졌지만 원작자 미로폴은 자신이 바라던 비탄과 충격을 구체화시킨 유일한 인물은 그녀뿐이라고 칭송한다.

초연이 있은 후 빌리 홀리데이는 곧장 콜롬비아 레코드를 찾아가 음반 제작을 제안하지만 거부당한다. 앨범이 발표된 후의 사회적인 파장을 우려한 탓이었다. 결국 '코모도'라는 인디레이블을 통해 앨범이 발표되고 예상대로 엄청난 파문이 일게 된다.

노래가 가지는 불편함 때문에 백인 우월주의자뿐만 아니라 보편적 백인들에게도 위협을 받게 된다. 하지만 어떤 위협에도 공연의 마지막은 스트레인지 프루트 차지였다. 이상한 과일은 그녀와 아프로 아메리칸들의 체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노래가 지금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여전히 또 다른 모습의 이상한 과일이 실재하기 때문이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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