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서 멜론 파는 동창 만나
전국에서 제일 멜론 맛이 달콤하고 부드럽기로 유명한 내 고향은 고령군 성산면이다. 지난여름, 매실을 따고 오던 길에 도로변에 천막을 치고 멜론을 팔고 있기에 엄마 생각이 나 한 바구니를 샀는데, 낯익은 얼굴, 중학교 동창이었다.
휴일이라 멜론 농사를 지으시는 어머니를 도우러 왔다고. 아들과 동창이라는 말을 들은 친구 어머니는 우리 아들 친군데 맛있는 거 줘야지. 품종이 다른 거라며 먹어 보라고 이것저것 자꾸 넣으셨다. 인정스러운 모습이 친구도 엄마를 똑 닮았다. 중학교 때까지 살던 내 고향은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늘 꿈을 꾸는 듯하다. 늘 아련한 추억으로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행복하다. 대구가 고향인 우리 아이들을 위해 시간만 나면 나의 아련한 추억이 묻어나 있는 내 고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30년 뒤에는 우리 아이들도 나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 같은 고향을 떠올리겠지?
김경란(대구 북구 읍내동)
♥ 부모님 고향 이야기는 '동화책'
사실 나는 고향이 도시라서 부모님 고향 이야기는 동화책을 읽는 듯했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시골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부모님 두 분 중에서 특히 어머니가 고향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산과 들에서 뛰어놀던 얘기며, 시골에서 제일 먼저 TV를 샀던 이야기, 당시 귀했던 예쁜 가방을 메고 다녔고 인기가 많았다는 이야기 등등 시시콜콜한 이야기지만 몇 번씩 반복해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또 그 얘기냐며, 가끔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곤 했지만 내심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소녀로 돌아가 버린 어머니를 볼 때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고향은 어머니에게 힘들고 지칠 때 그것을 버틸 수 있는 힘인 것 같다. 가끔 어머니의 고향을 갈 때, 아직도 그대로라며 나에게 당시의 추억을 설명해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20여 년 뒤에도 고향이 나에게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혜진(대구 북구 구암동)
♥도심 속 지친 심신 달래러 고향으로
내 고향은 의성 비안이다. 고향집에는 삼백 년 묵은 홰나무가 있다. 할아버지의 '홰나무 그늘에 삼대에 걸쳐 물동이를 스치면 귀인이 난다'는 말씀을 유언으로 듣고 가슴에 되새기며 살아왔다. 그 시절 삽살개가 꼬리 치며 발꿈치 물고 거름 터의 황소가 뜸배질하던 모습이 아련히 생각난다. 봄이면 앞뒤 산에 진달래 사태 지고 뒤란엔 감꽃들이 예쁘게 피고 진다. 뽕나무 그늘에서 누에 치던 어머니, 어미 소 앞세워서 밭갈이 가시던 아버지의 모습, 사랑이 넘쳐흐르는 토담집에서 할머니의 손을 잡고 마을 가던 그 시절이 그립다. 동시나무 그넷줄엔 선녀가 하늘 날고 종달새 노래 따라 보리 이삭 패던 고향, 밤이면 반딧불이 별똥으로 날아들었다. 소쩍새 솥 적다 울던 정겨운 고향, 면화 따던 다래끼엔 콩 가지가 잠을 잤다. 겨울이면 하얀 눈 은세계 될 때 오누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길을 가던 곳이다.
콩깻묵, 보리, 살겨 배고파 먹던 시절, 할머니 등에 업혀 배고픔을 달래던 곳, 아버지 등짐 지고 땀 흘리던 그 모습, 겉보리 찧어 삶아 밥을 짓던 어머니, 보릿고개 주린 배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허기져 김을 매던 그 시절이 그립구나. 온갖 풍상 겪으시며 아버지 날 사람 되게 한 그 집 어찌 잊으랴. 가고 또 가고프네. 향수도 병이런가. 무너진 토담집이 그리도 정이 간다. 한겨울 두엄을 지고 무명수건으로 바람막이하시고서 보리밭에 거름을 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운 곳이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희망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 말씀이 현실로 나타난 내 고향이다. 이런 고향을 떠나온 지도 반세기가 넘었다.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을 자주 간다. 태어나서 자라고 커 온 일들을 이야기로 들려준다. 도시생활에서 찌든 심신을 달래주는 고향이 그립다. 돌이켜 보니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요, 희망의 요람이다.
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생각나는 곳
고향을 생각한다는 단어로 수구초심(首丘初心: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는 뜻)만한 단어가 있을까?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심신이 고달플 때 문득 생각나는 것이 고향이다. 그러다 보니 타향을 떠돌다 늘그막에는 주섬주섬 고향을 찾아드는 것이리라!
며칠 전 메기매운탕이 생각나 강창다리를 건너간 적이 있다. 그때 무심코 돌아본 4대강 개발사업, 정말 어마어마하고 대단한 공사다. 집채만 한 중장비가 강 한복판에 떡 하니 자리하고 이곳저곳 파헤쳐진 흙무더기가 어지러이 널려있다. 이어 멀리 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큼지막한 조감도가 눈에 들어온다. 파란 하늘을 오롯이 담은 폭넓은 강, 푸른 융단을 펼친 듯 널찍한 잔디밭, 새들이 날고 태양은 따사로운 햇살을 포근히 내려놓는다. 무릉도원인 양 천상(天上) 낙원이 따로 없다.
내 어릴 적 고향도 이와 같았다. 봄이면 뒷동산에 진달래꽃 붉게 흐드러지고, 여름이면 여우비 한 줄기 지나간 뒤로 메뚜기 뛰는 벌판에 꼬리를 휘둘러 파리를 쫓는 누렁이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 그대로 소담스러워 평화롭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시골의 작은 동네였다. 그러나 내 고향 또한 산업화의 물결을 비켜가지 못했다. 지금은 기억에도 가물가물하지만 안동댐이 건설되었고, 그리고 어느 순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터전으로 어우러져 오순도순 농사를 짓던 이웃들이 무명옷고름에다 눈물을 찍어 이별을 고한 뒤 수류탄 파편처럼 전국으로 흩어져갔다.
사람들은 좀 더 안락하게 살고자 무시로 친환경을 곁들인 선진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 잘 살고자 하는 산업화 속에 따르는 크고 작은 희생들, 지금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피해자로 전략해가고 있다.
안동댐 공사로 말미암아 산기슭으로 두서넛 가구씩 옮겨 어깨를 비비며 사는 내 고향땅, 그 썰렁하고 한갓진 고향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은 아무래도 내 모태, 생각만 해도 어머니의 자궁같이 편안하고 무시로 따뜻한 모유를 내어주는 어머니의 가슴과 같은 고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고샅길에 떨어진 감꽃을 고사리 같은 조막손으로 살포시 잡아 치맛자락에다 대충 털어 "자~!" 하고는 억지를 부려 입에 넣어준 뒤 "어때 맛있지?" 하며 발그스름하게 상기된 양 볼을 두 손으로 가리며 환하게 웃던 옆집 동영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원선(대구 수성구 중동)
♥ "구제역이 바로 전쟁인 기라"
내 자식 챙기느라 명절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이모님께서 친정에 오셨다.
"이모님 오셨어요. 건강하셨나요. 절 받으세요." 절 받는 것도 싫다는 이모님께서는 고향 소식을 꺼내 놓으셨다.
"야들아 총 쏘고 포탄이 떨어져야 전쟁인 줄 알았는데 이웃동네 멀쩡한 소들이 구제역으로 살처분됐고 우리 밭 옆에 살처분된 소를 묻는데 죽기 싫어 통곡하는 소가 쩌렁쩌렁 산을 흔드니 가슴이 미어지더라. 내 친구도 소가 살처분되던 날 쓰러져 눕더니 기력이 없어 입원까지 했다 카더라. 촌에는 소가 재산 1혼데 하루아침에 잃었으니, 인자 퇴원했겠지만 놀러가는 것도 못 가겠다. 아이고, 말도 마라 이게 전쟁인 기라."
이모님께서는 자식들이 설 쇠러 내려오는 것도 구제역 방역에 걸림돌이 될까 오지 말라고 하고 피신 왔다고 했다. 현실감 있는 넋두리에 가슴만 미어질 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빨리 구제역에서 벗어나길 바라면서 구제역 파동으로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께 힘내시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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