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제역이 휩쓸고 간 자리, 외국산 육류 공습 시작

소고기 수입 8년만에 최고 …대형마트 매출 급증 축산농 "시장 점령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사이 외국산 육류의 국내 시장 잠식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외국산 소고기 전문점'이라며 광고 문구를 내건 식당이 성업중인가 하면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도 외국산 육류 판매량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제역 파동으로 국내산 육류값이 계속해서 오를 것으로 보여 국내 축산시장이 외국산에 점령당할 수 있다. 정부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외국산 육류의 국내 시장 잠식

24일 오후 9시 30분쯤 대구 북구 침산동의 한 수입고기 식당. 가게 밖과 입구에는 '일본 와규(和牛) 흑우 전문점'이라는 홍보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생등심과 생갈비의 가격은 100g에 8천원으로 국내산의 절반 수준. 싼 가격 때문에 식당 안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이유호(38) 씨는 "이곳은 한우보다 가격도 싸고 청정 '일본 흑우'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식당을 찾았다"고 말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 쇠고기 수입량은 2만7천393t으로 집계됐다. 이는 구제역 발생 직전인 지난해 11월의 2만3천109t에 견주어 18.5%, 2009년 2만2천557t에 비해서는 21.4%나 많은 양이다. 또 2003년 10월 이후 최고 기록이다.

돼지고기 수입 증가세도 심상찮다.

지난달 돼지고기 수입량은 3만4천91t으로 종전 최고기록(2008년 3월) 3만3천667t을 2년 10개월 만에 갈아치웠다. 2008년 32만3천598t에 달했던 돼지고기 수입량은 그해 12월 음식점의 원산지표시 대상에 돼지고기가 포함되면서 2009년 29만4천935t, 2010년 28만9천210t 등 꾸준히 감소했다.

지역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도 외국산 육류 소비가 대폭 늘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호주산 소고기가 최근 '청정 이미지'라는 홍보에 열을 올리면서 지난해 12월부터 매출이 늘더니 이달에는 20%나 늘었다"며 "돼지도 제주 토종돼지 등 지역 프리미엄급과 외국산을 찾는 고객이 10%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수성구 만촌동에서 수입고기 직판장을 운영하는 K(53) 씨는 "12월 중순 이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증가해 매출이 40%나 증가했다"고 말했다.

◆외국산 잠식 차단 대책 시급

구제역 파동에 따른 국내 축산업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한우협회 안동시지부 김창근 사무국장은 "이동 제한이나 도축장 폐쇄로 한우농가들의 판로가 막혀있다"며 "한우 소비가 주춤한 틈을 타 수입고기 업체들이 시장 잠식을 위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북대 김기석 교수(수의학과)는 "구제역으로 종자 돼지 대부분이 사라졌기 때문에 외국에서 다시 들여와야 한다"며 "외국 기업이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크지만 우리로선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수입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특히 정부의 안일한 '뒷북 정책'에 대한 비난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25일 정부는 구제역으로 돼지고기 값이 오르자 서민들을 위해 수입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를 없앴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수입업자들이 없앤 관세만큼 고기값을 올려 정부의 정책을 무의미하게 만든 것이다.

실제 수성구에 있는 한 수입고기 직판장은 "구제역 이후 미국산 고기 수입 가격이 쇠고기 30%, 돼지고기 50%가 상승했다"며 "돼지고기의 경우 정부의 관세 철폐 발표 후 목살과 등심 등 일부 부위는 가격이 더 올랐다"고 밝혔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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