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30대 젊은층의 탈대구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취업 전부터 서울 유학길에 올라 '취업 스펙'을 쌓는 대학생, 연봉이 더 높은 대구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로 향하는 직장인 등 젊은층의 '대구 엑소더스'가 심각한 수준. 또 대학병원 인턴과 변호사 등 전문직 젊은층의 외지 유출도 확산되고 있다.
◆'취업 스터디'도 서울에서
지난해 12월 서울 현대백화점에 입사한 윤아름(24·여·경북대 4학년) 씨는 지난 2009년 휴학을 하고 6개월 동안 '서울 유학길'에 올랐다. 잡지사의 대학생 기자단, 여대생 리더십 프로그램 등 인턴 경험을 쌓고 싶었지만 대구에서는 좀체 기회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
윤 씨는 "서울 출신과 취업 전부터 경쟁하고 다양한 인턴 경험을 쌓기 위해 서울행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경험이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요즘 윤 씨처럼 취업 전부터 서울로 '원정 스터디'를 떠나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계명대 4학년 백지혜(25·여) 씨는 "지난해 휴학을 하고 서울로 가서 취업 스터디를 할 생각이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그러지 못했다"며 "서울에는 직종별로 스터디가 세분화돼 있고 대구보다 취업 정보도 더 많다. 가고 싶은 기업이 대부분 서울에 있어 취업 준비부터 그곳에서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젊은층의 탈대구는 한국 100대 기업 본사 90% 이상이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대구보다 직업 선택의 폭도 넓기 때문에 빚어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연봉이 더 높은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로 향하는 이들도 있다.
박준호(가명·30) 씨는 지난해 가을 대구의 한 철강유통회사를 그만두고 서울의 IT벤처기업 홍보팀으로 직장을 옮겼다. 대구 직장의 연봉이 더 높고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해 경제적으로 유리했지만 미련 없이 대구를 떠난 것이다. 박 씨는 "돈을 모으려면 대구가 낫지만 대구에는 젊은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상당히 좁다"며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요즘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 같아서 서울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직 젊은층도 '탈대구'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직 젊은층의 '탈대구' 현상도 확산되고 있다. 최근 경북대병원을 제외한 대구지역 대학병원 4곳이 2011년 인턴 모집에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각 대학에 따르면 올해 지난 5년간 지원자 수가 모집정원 수를 넘어선 곳은 거의 없다.
올해 대규모 인턴 미달로 곤욕을 치른 계명대 동산의료원은 "인턴 경쟁률은 민감한 자료다"며 공개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은 지역 의대 졸업자들이 서울과 수도권 대학병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계명대 의대 본과 4학년 K(25) 씨는 "지역 의대생 중 수도권 출신자가 많아 연고지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구가 고향인 의대생들도 서울로 가고 싶어한다"며 "다양한 대학 출신자들과 경쟁할 수 있고 서울권 병원의 임금 수준과 근무 여건이 대구보다 낫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부에서는 인턴 미달 사태가 지속되면 지역 의료계가 장기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남대병원 김용대 교육수련실장은 "인턴 미달이 장기화되면 전공의가 줄어들어 안 그래도 지원자가 적은 외과나 산부인과 등 비인기 학과에는 지원이 전무하게 될 것"이라며 "지역 의료계 발전을 위해서라도 지역 의대생들이 대구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우려했다.
대구 변호사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구지방변호사협회 관계자는 "20년이 지나도 대구 지역 변호사 선임료는 '제자리걸음'이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젊은이들이 대구의 사정을 뻔히 아는데 굳이 이곳에 개업할 이유가 없다"며 "현재 대구 로스쿨 두 곳에는 수도권대 출신자들이 많은데 지역에 연고가 있어도 대구에 남지 않는 상황에서 젊은 변호사들의 탈대구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경북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따르면 2009년 로스쿨 신입생(정원 120명) 중 83명(69.2%), 지난해에는 정원 130명 중 73명(56.2%)이 수도권대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남대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2009년에는 신입생(정원 70명) 중 50명(71.4%), 지난해에는 61명(87%)이 수도권대 출신이다.
2017년 사법시험이 사라지고 로스쿨 출신자만 치를 수 있는 변호사 자격시험이 도입되면 졸업장을 딴 뒤 대구를 떠나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올해 경북대 로스쿨에 합격한 정모(31) 씨는 "서울에는 대형 로펌도 많고 변호사 인력이 많으니 한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다. 선임료가 낮은 대구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보다 경쟁이 심하더라도 서울로 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역 인재' 붙잡아라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역 인재를 육성해 지역에 붙잡아 두는 정책에 실패했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 대학의 우수 인재에 집중투자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취지로 실시된 '누리 사업'(2004년 시행~2008년 종료)에 1조2천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사업 수혜자들은 대부분 서울 수도권으로 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역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하기 전 지역의 '수요'(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구경북연구원 이부형 박사는 "지역 4년제를 졸업한 우수 인재를 흡수할 만한 기업이 대구에 없으니 이들이 타지로 향하는 것"이라며 "대구는 첨단 산업보다 생산과 제조업 중심으로 발달돼 있다. 지자체가 대기업 유치에만 목을 매지 말고 가능성 있는 토종 기업을 키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구에 본사를 둔 기업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난해 매출 2조3천억원을 올린 자동차 부품전문회사 'SL'은 지난해부터 공채에 지역인재 우선 채용 전형을 도입했다. SL 김희진 상무는 "매년 11월 200여 명씩 신입사원을 뽑지만 지역대와 협력 프로젝트 진행해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을 회사에 바로 채용한다"며 "내실있는 지역 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역의 젊은이들과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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