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 창의, 협동'을 교훈으로 한 대구공업고등학교는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조국 근대화의 기수'를 표방하며 우리나라 산업역군을 길러낸 산실이었다. 1990년대 이후 이러한 전통을 계승·발전시킨 대구공고는 이제 '미래의 창조자 대공인'을 모토로 창의적 기능인을 양성하는 요람이 되고 있다.
1925년 4월 가구과 20명을 시작으로 '대구공립공업보습학교'로 첫 입학식을 한 이후 1937년 3년제 대구공립직업학교로 학제를 변경, 이듬해 6월 현재의 대구시 동구 신암동 현 교사로 이전하기에 이르렀다. 올해로 개교 86주년을 맞은 대구공고의 동문 수는 5만600여 명이며 전공과목은 전자기계과, 건축그래픽과, 건설정보과, 디지털전기정보과, 식품화학공업과, 섬유설계과, 자동차과 등 7개 과이다.
이동연(40회·61·㈜신영전설 대표이사) 대구공업중·고등학교 총동문회장은 "이전엔 대구·경북 일원의 가난한 집안의 인재들이 모여들면서 실업계 명문고로서 명성을 날렸다"고 운을 뗀 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이제부터는 모교를 명문교로 만들어야 인재들이 몰려들 것으로 인식하고 총동문회에서 어떡하면 모교의 옛 명성을 찾을 수 있을 지에 대해 지혜를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총동문회는 30억원을 모금해 모교 교정 축구부 합숙소자리에 올 10월 준공목표로 지상 5층 규모의 역사관을 건립하고 있으며, (재)대구공업중·고등학교 총동문회 장학회를 설립해 다양한 모교와 후배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9월 '배려' '베풂' '배움' '존중'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동문회 수장을 맡게 된 이 회장은 "모교의 명성은 현재 우리나라 산업현장에 진출해 있는 동문들의 활약상만 봐도 짐작될 만 하다"면서 "예를 들어 현대조선 초창기에 많을 때는 600여 명 동문이 한 직장에서 일했고 현대자동차에는 자동차과 동문만 400명 넘게 대거 진출했으며 울산 한 도시에만 동문 4천여 명이 일할 때도 있었다"고 산업기수들의 산실로서 모교를 자랑했다. 최근엔 디지털전기정보과 후배들이 삼성과 LG전자로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로 9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대구공고의 저력은 각종 산업현장에서 이론과 실기를 접목한 '명장' '기능장'을 배출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이 회장은 이 대목에서 "포스코가 지난 100년간 사용했던 제철소 용광로를 대체할 획기적 기술인 포스코의 '파이넥스 공법'을 자체 개발한 주역이 동문 강창오(31회) 선배"라고 소개했다. 선배들의 이 같은 장인정신은 대구공고가 2010전국기능경기대회서 금 3개, 은 3개, 동 1개, 장려상 1개로 종합성적 2위에 해당하는 은탑을 수상한 것으로 재연됐고, 올해 졸업식에선 졸업생 566명 전원이 진학 또는 취업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엄격한 선·후배 규율 속 익힌 기능
인문계와 달리 실업계인 대구공고는 각 과별 선·후배 간 규율이 엄격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과별 특성상 위험한 기계를 조작하는 기계과나 폭발위험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다루는 화학과의 경우 자칫 방심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늘 상존한다. 이 때문에 동문들은 선배로부터 호된 훈련을 통해 안전사고예방정신이 몸에 배도록 하고 있고, 그 가운데 끈끈한 동문 간 의리 또한 내로라할 정도로 깊어지는 게 보통이다.
기계과 출신 최종민(51회·51) 총동문회 사무국장은 "추운 겨울날 밀링머신 같은 큰 기계를 닦으려면 차가운 기름 속에 손을 넣어야 하는데 그게 싫어 게으름을 피우다가 선배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다"고 회고했다. 각종 기계를 조작하며 예리한 부분에 손을 베이기는 다반사였다. 전기과의 경우는 전나무 전주를 오르는 실습이 있었다. 전주는 발에 걸치는 굵은 철사 덧신으로 인해 군데군데 파여 날카로운 나무 조각이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자칫 전주를 오르다가 겁을 먹고 그만 전주를 안아버리면 그대로 밑으로 미끄러지면서 팔과 허벅지 등에 나무가시가 박혀버린다. 어떤 경우 박힌 가시를 빼내는데 2시간씩 걸리기도 했다. 당사자 고통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다.
◆아! 힘들어도 즐거웠던 학창시절
몸과 머리로 기능을 익혀야 했던 공고생들은 각 전공과별 한두 가지 학창시절 추억이 없을 수 없다. 섬유과는 염색 실습시간에 약품처리를 잘못해 연두색이 붉은 색으로 변하면서 선생님과 선배들로부터 벌을 받아야 했고 자동차과는 추운 겨울에 부품을 경유로 씻으며 손이 다 갈라져 친구들에게 까마귀 같다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토목과는 더운 여름 측량한답시고 무거운 기구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측량하다가 기구를 떨어뜨려 얼차려를 받은 기억이 있고 화공과는 논다는 급우들이 메틸알코올로 소주를 만들어 마시다 목이 타들어가 혼비백산한 경험이 있다. 건축과는 시멘트와 모래를 혼합하는 과정에 물 조절에 실패해 기껏 세워놓은 담장이 와르르 무너지는 웃지못할 '노가다' 경험에 박장대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반면 미제 포드 자동차를 조립해 운동장에서 신나게 시운전하던 자동차과 동문들은 다른 과 학생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모교지원 장학제와 교기(校技)
총동문회 산하 장학회는 매년 신입생 20명에게 50만원씩과 대학진학 졸업생 7명에게는 100만원씩 모두 1천700만원의 성적우수 장학금을 지원한다. 이어 모교의 교기인 축구부에 연 2천만원, 검도부에 500만원씩을 지원하며 악대부엔 고장 난 악기를 교체할 비용을 지원한다. 또 연말 불우동문 자녀들을 대상으로 장학금 1천만원을 별도로 책정해 두고 있다.
이런 동문회의 지원에 힘입어 2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축구부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검도부 이규호(3년) 군은 지난해 제19회 회장기 전국고등학교검도대회 개인전에서 당당히 우승, 동량급 전국 최고의 검객자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또 전국 최고의 관악동아리임을 자처하는 관악부는 제6회 전국 초·중·고 관악합주경연대회에서 고등부 최우수상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학교를 빛낸 동문들
대구공고는 우리나라 제11·12대(전두환) 및 13대(노태우) 대통령의 모교로도 유명하다. 전 전 대통령은 24회 기계과 졸업생이고 22회 전기과 출신 노 전 대통령은 학제가 5년제이던 시절 3년 6개월을 대구공고에서 공부했고 이후 경북고등학교에서 졸업했다.
대구공고 동문들은 그 특성 만큼이나 다양한 사회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우리별 1호를 쏘아올린 전 체신부장관 최순달(21회) 박사를 비롯해 박수길(23회) 전 UN대사, 최진민(30회) 귀뚜라미 보일러 대표, 노희찬(33회) 대구상공회의소 명예회장 등이 있다. 또 항공기정비 명장 1호 김주태(35회) 씨, 국내 정유시설 1인자 이종근(19회) 씨, 광양제철소 산업명장 김성현(40회) 씨, 삼성조선 명장 신해균(50회) 씨, 자동차 정비 명장 박우근(52회) 등이 현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총동문회 연중행사
대구공업중·고 총동문회는 동문 간 의리와 모임 및 조직력이 탄탄한 것으로 이름 나 있다. 매년 10월 둘째 일요일 '총동문체육대회'엔 6천여 명이 모이고 있으며, 그 전날 토요일 졸업 30주년 '은사의 밤'에도 수많은 동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다.
또 매년 4명의 '자랑스러운 대공인'을 선정해 시상함으로써 모교의 저력과 후배들의 귀감을 삼고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