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세기 실크로드] ⑧바리쿤 초원, 회왕릉, 쿠무타크 사막

붉은색 지붕의 산장이 있는 그림 같은 바리쿤 초원. 그 연둣빛 언덕을 동네소년이 노새를 타고 내려가고 있다.
붉은색 지붕의 산장이 있는 그림 같은 바리쿤 초원. 그 연둣빛 언덕을 동네소년이 노새를 타고 내려가고 있다.
회왕릉의 건물 벽면은 정교한 타일로 화려하고 다양한 색상으로 모자이크 되어 있다.
회왕릉의 건물 벽면은 정교한 타일로 화려하고 다양한 색상으로 모자이크 되어 있다.
초원에서 만난 한 아이가 갓 태어난 어린양을 자랑하고 있다.
초원에서 만난 한 아이가 갓 태어난 어린양을 자랑하고 있다.
바리쿤 초원의 언덕 위에서 소와 양들이 나란히 풀을 뜯고 있다.
바리쿤 초원의 언덕 위에서 소와 양들이 나란히 풀을 뜯고 있다.

둔황에서 중식 후 8시간쯤 버스에서 흔들리면 붉은 노을에 잠긴 하미(哈密)시에 닿는다. 천산남북로의 분기점이자 실크로드의 거점도시이다. 바로 여기가 마르코 폴로가 음식과 잠자리는 물론 여자까지 서비스 받는다고 한 곳이다. 남성의 욕망을 위해 여성의 몸이 교환된 고장이구나. 어제 달콤했던 하미과의 맛과 향이 갑자기 씁쓸해지고 뱃속이 꼬르륵한다. 숙면을 취한 뒤라 아침은 몸도 날씨도 쾌청하다. 바리쿤 초원으로 향한다.

차창 풍경은 척박한 사막 그대로다. 기괴한 무채색의 산과 구릉들 사이의 회색 도로에는 간혹 스치는 트럭의 거친 숨소리뿐이다. 간간이 조림사업 차 심어놓은 묘목의 관수용 호스들이 21세기 중화민국의 핏줄처럼 길고 탱탱하게 꿈틀거린다. 한 시간 여 달리니 초지가 듬성듬성 잿빛 산에 앉아있다. 색깔이 바뀌니 바야흐로 초원이 가깝구나. 초원 입새에서 버스는 우릴 토해낸다. 누런 보리밭을 굽어보며 토라진 비탈에서 볼일을 본다. 아뿔싸! 유채꽃에게 들켰다. 고도가 높아지고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들은 뭉게구름 같다. 드문드문 게르의 흰빛 원통과 예쁜 현대식 산장의 붉은 지붕이 번갈아 보인다. 분지에 있는 바리쿤 초원은, 만년설 덮인 산꼭대기와 중턱의 상록수림과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 목초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절경이다.

해발 1천500m 정도에서 우리는 욕망처럼 분출된다. 공기를 심호흡 하니 유목민의 기가 실핏줄까지 전해온다. 초원의 한가운데 카자흐족 거처를 향하는 일행의 발걸음은 기마민족의 기상으로 호연하다. 사토로 담을 쌓은 나지막한 움막 한 채가 곁의 게르와 정답다. 지붕 위 밭에서 작물을 돌보는 주인장이나 마당의 모자(母子) 모두가 무표정이다. 성긴 울타리를 쳐둔 마구간과 게르도 본다. 단순한 외양과는 달리, 게르 안은 화려하다. 벽을 둘러싼 큼직한 목단꽃무늬 천은 유년의 이불처럼 포근하다. 머무름보다는 떠남을 예고하는 듯, 한편엔 식량자루가, 그 옆엔 침구와 옷가지 보퉁이가 놓여 있다. 널빤지 위에 앉아 셔터를 누르는 순간, 번쩍 옛 고향집이 왔다간다. 마당의 높은 단 위의 옛 빨래사분(비누) 같은 마유치즈 한 조각을 혀끝에 대니 퀴퀴하고 짜고 딱딱하다. 떠날 때 뒤돌아 본 저 여자, 흰 머릿수건 쓰고 흙 담에 기대선 저 여자, 검붉게 거친 살갗 밑에 모든 것 다 묻고 침묵으로 서 있는 저 여자, 멍하니 먼 산맥 너머를 응시하고 있는 저 여자가 눈망울로 말한다. "나도 따라가면 안 돼요?"라고. 서구 페미니스트들의 유목적 상상력의 맹점을 본다.

하미의 회왕릉은 위구르의 이슬람문화와 중원의 한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양식이다. 17세기에서 200년간의 왕실 묘로 1838년에 지은 회왕묘는 지금은 두 채의 건축물만 남아 있고 그 안에 무덤을 안치했다. 입구의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니 윗면이 둥근 모양과 다각형 모양의 두 개 목조건축물이 나란히 서있다. 지붕이나 처마와 108기둥 그리고 격자무늬의 문 등은 분명 중원의 불교 양식일 것이고, 왕릉 안의 내부 천장의 녹색 타일은 이슬람식이다. 그 옆의 수용인원이 5천 명인 이 지역 최대의 모스크는 정교한 타일로 모자이크 되어 있고 꼭대기의 에메랄드 빛깔의 돔은 터키의 사원을 찾은 듯하다. 내부 벽에는 아름다운 꽃문양과 코란의 인용문이 새겨져 있다. 역사진열관에는 하미시 성벽 지도, 제1대 회왕의 초상화, 왕좌, 전쟁도 등이 보관되어 있다. 경내에는 하트모양의 하얀 돌기둥을 뉘어놓은 왕족과 포교사들의 묘가 40여 구나 된다. 이런 흔적만으로 용트림하는 중화민국에서 위구르인은 그 옛 영화를 복원할 수 있을까? 관광객조차 드문 회왕릉에서 잠깐 생각해본다.

샨샨 행 길은 황사로 뿌옇다. 모래산이란 뜻의 쿠무타크 사막공원을 찾는다. 타림분지 동남쪽의 고대 오아시스 국가 누란 왕국이 사막에 휩쓸려 갈 때, 인어가 되어 영혼을 바쳐 왕국을 지키려는 공주의 소원이 어린 곳으로, 한나라의 침입 때 샨샨으로 국호를 변경했단다. 쌍봉낙타와 현장법사 행렬도, 고창왕국의 무희들의 조각상이 입구를 지킨다. 모래빛깔이 위구르인의 살갗처럼 붉다. 공주의 피맺힌 슬픔의 빛깔인가? 전동지프가 모래산을 질주하니 울음조차 울 수 없는 모래산의 운명이다. 바퀴자국으로 숨죽은 모래가 전설의 사라짐 같이 슬프다. 터벅터벅 걷는다. 혹 누란공주의 지느러미라도 찾는다면! 모래톱과 물결모양의 모래구릉, 모래산 능선을 밟으며 환상에 빠진다. 능선에 오르니 새파란 오아시스 도시가 가까이 보인다. '녹음은 물러가지 않고 사막은 도시로 나오지 않는다'(綠不退沙不進). 사막과 오아시스 도시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도시를 표현한 명언이다. 인어공주의 지느러미 대신 모래더미에 묻힌 관광객의 비닐봉지 끝자락이 펄럭인다. 지느러미는 오늘 밤 꿈속에서나 만나려나?

글·정화식(대구대 교수·영문학)

사진·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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