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의 행복칼럼] 이주노동자

6년 동안 대구적십자병원에 근무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외국인 무료진료를 하는 날이었다. 처음 그 일을 시작할 때는 무슨 뚜렷한 이념이 있거나 봉사정신이 투철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병원장이라는 직책상 그 일을 만들게 됐고, 내친김에 계속 일을 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다. 한 달에 두 번씩 일요일마다 출근하자니 힘들었다. 그러나 진료가 계속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우고 나니 나중에는 남들이 노는 일요일에 일하는 게 오히려 기쁘고 즐겁게 됐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공식적으로 '이주노동자'라고 부른다. 아프리카 케냐부터 파키스탄, 스리랑카, 네팔, 필리핀, 베트남, 중국 등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 만났을 땐 얼굴 색깔이 진하고 나이도 적고 우리말도 서툴러 불쌍하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이 바뀌어 오히려 내가 불쌍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게 되었다.

그날은 진료뿐 아니라 노동 상담도 해주었다. 대부분이 봉급을 받지 못해 도움을 청하는 내용들이었다. 목사님, 변호사님들이 상담을 도와주었는데 나도 자주 면담을 듣곤 했다. 듣다 보면 화나는 일이 많았다. 불법체류자라는 약점을 이용해 봉급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굶어 죽으라는 말인가' 하는 생각에 울화가 치밀어 내가 고함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화나고 억울할 텐데도 큰소리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침울한 표정이어도 다소곳하고 차분하게 예의를 차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정작 불쌍한 사람은 나처럼 수양되지 않은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날은 점심도 준다. 메뉴는 바나나, 닭튀김, 초코파이, 김밥, 어묵 등. 음식이 남는 경우가 있어 갖고 가라고 주면 절대로 갖고 가지 않았다. 딱 제 먹을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거절했다. 제 먹을 것만 챙기는 욕심 없는 사람들, 정직한 사람들, 경우 바른 사람들이었다.

통역을 위해 영어는 계명대 이경희 교수가 맡아주었고, 중국어는 상하이서 유학 온 중국인 학생 위군과 한 여학생(이름이 기억이 안 남)이 도와주었다. 이분들에게서도 이렇게 사는 게 옳은 인간의 삶이구나 하는 것을 배웠다. 진료를 위해 봉사 나온 경북대 의대 '장승', 영남대 의대 '나눔자리' 동아리 학생들, 그리고 수많은 전공의 선생들도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동안 만날 입으로만 뻥치고 다닌 내가 부끄러웠다. 이런 천사들을 만나 스스로 '정신적 혹은 양심적 결핍자'임을 느끼고, 한심하고 불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들에게 배우고 닮아가면서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병원을 옮기고 보니 다 흘러간 옛 노래가 됐다. 행복했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이제 어디 가서 그런 도사님들을 찾을 것인가? 쿠오바디스 도미네?

대구의료원 신경정신과 과장·서구정신보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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