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문호인 괴테는 "친절은 사회를 움직이는 황금 쇠사슬이다"고 했다. 친절은 인간 관계를 기분좋게 만들어 사회를 아름답게 굴러가게 만드는 윤활유가 된다. 요즘은 시민의식이 성숙한데다 서비스업이 워낙 다양하고 친절교육이 기본이 되다보니 어디서든 상냥한 말투와 미소 띤 얼굴, 상세한 설명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친절에도 '센스'가 필요하고 '정도'가 있다. 지나치게 과장된 표정과 기계적으로 뱉어 내는 말은 오히려 거부감이 들게하기도 한다. '기분좋은 친절'과 '불편한 친절' 사이, 접점은 어디쯤일까?
◆너무 기계화된 친절은 불편해!
김지은(24) 씨는 친구들과 함께 레스토랑에 갈 때마다 불쾌한 기분을 참을 수가 없다. 문을 들어설 때부터 미소 띤 얼굴로 "오시는데까지 불편은 없으셨습니까?"라는 말을 들을 때는 "정말 친절한 가게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식사를 하는 내내 자동응답기처럼 메뉴얼화 된 직원의 멘트를 반복해 듣다보면 슬며시 짜증이 치밀어오른다. "고객님, 식사는 드시기 편하게 가운데로 놔 드리겠습니다. 그릇이 뜨거우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십니까? 그럼 즐거운 식사 되십시오." 음식을 가져온 직원은 잠시도 쉬질 않고 순서대로 멘트를 내뱉는다.
김 씨는 "친구들과 한창 수다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직원이 끼어들어 틀에 박힌 과잉친절을 베푸는 걸 보면 정말 짜증이 난다"며 "아무리 친절한 서비스도 좋지만 상황에 대한 판단 없이 로봇처럼 정해진 멘트를 하는 것은 매너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황모(46) 씨는 최근 한정식식당에 들렀다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사업상 중요한 손님을 모셔야 하는 자리이다보니 값이 비싸지만 조용한 한정식집을 택했다. 그러나 음식을 낼 때마다 자세하게 설명을 늘어놓는 직원 때문에 번번이 대화가 끊어져야 했던 것. 그것도 친절하고 상냥한 말씨가 아니라 사무적인 말투로 외운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식이었다. 그는 "음식 한 가지가 들어올 때마다 '어디까지 이야길 했더라?'를 다시 되씹어야 했다"며 "더구나 손님의 입맛은 다 제각각임에도 불구하고 '몸에 좋은 홍어와 샐러드는 왜 남기느냐', '연어는 피부에 좋으니 꼭 먹어야 한다'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어야 하다보니 민망하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이형근(44) 씨는 콜센터 직원들의 높은 소리에 불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당췌 사람과 대화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 "마치 개그맨 김영철 씨가 114 안내원들의 소리를 흉내내는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한 높은 음 때문에 대화의 내용이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며 "왜 굳이 이런 톤을 사용하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왜 친절해야만 하는가?
이처럼 고객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어색한 친절은 직원 교육을 위해 고객 응대법을 메뉴얼로 정해뒀기 때문이다. 대구서비스교육센터 우기윤 대표는 "직원들의 친절 교육을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미리 정해두는 메뉴얼이 꼭 필요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문제는 너무 '메뉴얼'만을 강조하다보니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정해진데로만 따라해 오히려 고객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경우가 생겨나기도 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왜 친절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우 대표의 지적이다. '친절함'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손님을 기분좋게 함으로써 더 많은 매출을 올리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우 대표는 "직원들에게 친절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정해진데로 따르게만 하는데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경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친절한 태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함께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메뉴얼에 따라 기계화된 응대를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눈치', '센스'까지도 메뉴얼에 포함시켜 좀 더 상세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고객의 입장까지 배려한 상황별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두고 충분한 연습을 해야 한다.
기업체의 경우 모든 사람이 친절이 몸에 밴 태도를 보인다면 갓 입사한 직원 역시도 그 영향을 받아 친절한 조직문화에 동화된다는 것. 우 대표는 "처음 시작은 조금 강압적인 방식도 필요하겠지만, 일단 조직문화가 잘 정착된 후에는 오히려 관리가 쉬워지고 직원들 역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고객 연령대에 맞춰 적절한 응대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대구의 중'장년층은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 기질이 강하다보니 오히려 무릎을 꿇고 앉아 주문을 받거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이라며 지나치게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불편해 하는 경우가 많은 것. 우 대표는 "젊은층에게는 친절이 당연시되고 익숙한 문화이지만, 중'장년층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다"며 "이 역시 정해진 메뉴얼보다는 대상에 따라 조금씩 유연하게 응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과잉 친절을 오히려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최근 백화점에서는 고객 응대 방식을 바꾸고 있다. 따라다니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할 때만 재빠르게 응대하는 식으로 직원을 교육시키고 있는 것. 우 대표는"고객은 설득하는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라고 했다. 손님이 들어서는 순간 친절하게 인사를 하지만 요청이 있을 때까지 가급적 고객이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거리를 둬야 하는 것이다. 그는 "직원이 할 일은 고객이 물건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것이라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직도 대구의 친절은 낙제점
대구시는 올해 '미소친절 대구'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올해는 정부가 정한 '대구방문의 해'이면서 오는 8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있지만, 대구는 불친질한 도시라는 부정적 인식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대구경북연구원에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현재 대구 친절의 현주소는 전국 최악의 수준. 대구의 정체성 부문에서 대구시민들은 의리와 명분, 깊은 정 등 긍정적인 면보다 '보수성' '배타성' '무뚝뚝' 등 부정적인 면이 크다고 응답했고, 대구시민에 대한 평가는 질서 57.7점, 청결 56.8점, 친절 56.7점, 배려 54.8점 등 대부분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올해를 미소친절 운동 원년의 해로 정했다. 1단계로 2014년까지 전국 최고수준의 '미소친절 대구'를 달성하고, 2단계로 2020년까지 중장기적으로 세계 최고의 미소친절 도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특히 대구의 공무원들은 과거에 비해 친절해졌다는 말을 듣고 있지만 아직은 조금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비스교육 전문가들은 "공무원이야 말로 가장 친절해야 할 직업군 중 하나"라며 "공무원의 친절도는 청렴도와 결부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친절과 청렴도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걸까? 전문가들은 "공무원의 불친절한 태도를 접하면 민원인 입장에서는 '뇌물이라도 찔러줘야하나'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시작된 관계가 점점 더 큰 부패의 온상으로 변질되는 것"며 "잘못된 편견이고 관습이긴 하지만 우리 문화 속에 아직도 이런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공무원은 친절한 태도로 시민들을 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소한 문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번진다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이곳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우 대표는 "친절은 습관이지만, 동기가 있을 때는 좀 더 빠르게 몸에 배어들 수 있다"며 "기업이나 관공서 등에서 친절 교육을 실시할 때 보상 체계를 확실하게 마련하는 것이 좋으며, 연기 교육 등을 통해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직접 경험해본다면 더욱 친절한 습관이 빠르게 정착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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