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토 다큐] 구제역 침출수 유출 경북 곳곳서 식수난

자식같은 가축 땅에 묻고나니, 이제 마실 물 걱정이…

25일 오후 경북 영주시 안정면 묵리 마을회관 상수도 앞. 삼삼오오 모인 주민들이 저마다 물통을 들고 나와 물을 받고 있었다. 35가구 90여 명의 주민은 대부분 70대 노인들. 주민들은 힘에 부친 듯 식수로 사용할 물을 소량씩 담아 집으로 날랐다.

이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집집마다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해 왔다. 구제역으로 마을 인근에 돼지를 매몰한 후 악취가 풍기고 지하수에서 핏물이 섞여 나오면서 주민들은 지하수 사용을 중단하고 마을회관 앞에 유일하게 설치된 상수도에서 식수를 길러 먹고 있다. 허드렛물은 지하수를 사용하지만 찜찜한 마음에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때아닌 식수난이 닥치자 영주시는 마을회관에서 각 집앞까지 긴급 상수도를 설치키로 했다.

영천시 고경면 청정리. 이곳 주민들도 먹는 물 걱정이 크다. 이 마을 역시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해왔지만 구제역에 걸린 가축 매몰 이후 지하수를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됐다. 지난해 12월 중순 마을 어귀에 구제역에 걸린 돼지 500여 마리를 매몰한 지 며칠 만에 침출수가 흘러나와 곤욕을 치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가구 50여 명의 청정리 주민들은 모두 시판 생수를 사다 먹고 있다.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최상철 마을 이장은 "생수를 사려면 20㎞나 떨어진 영천시내 대형마트를 찾아야 하는데 노인들에게는 큰 일거리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영천시는 이 마을에 인근 영천댐 물을 이용해 올 연말쯤 상수도 설치를 검토 중이다.

현재 경북도내 구제역 매몰지는 1천64개소. 이 가운데 200여 곳이 식수원인 낙동강, 안동댐, 영천댐 인근에 위치해 있다.

낙동강 상류 지역에는 45곳이 붕괴나 유실 위험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자칫 침출수가 나오면 하천을 타고 식수원으로 유입될 위험에 놓인 곳이다. 붕괴위험이 있거나 지하수 오염이 우려되는 곳도 상당수에 이른다.

부실 매몰지는 긴급 복구로 급한 불은 끈 상태. 당국은 매몰지마다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붕괴위험 지역에는 옹벽을 설치하고 침출수는 뽑아내 분뇨처리키로 했다. 매몰지 인근 지하수는 샘플을 채취해 수질분석이 한창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기온이 오르고 봄비라도 많이 내리면 피해가 현실화될 것이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하수를 사용하는 마을에서는 상수도 설치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사안이 다급하다 보니 도는 올해 상수도사업비를 200% 늘려 조기완공을 계획 중이다. 그러나 매몰지역이 워낙 많아 주민들의 식수 불안감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구제역의 끝자락에 다가오는 새봄, 희망과 재앙의 기로에 선 봄이다.

사진·글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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