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치 트위터] '석패율제' 논의에서 가려진 것들

윤순갑 교수(경북대 정치외교학과)
윤순갑 교수(경북대 정치외교학과)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자를 비례대표로도 동시에 등록시킨다. 개표가 끝난 후 지역구에서 낙선한 후보자를 아깝게 떨어진 순서대로 비례대표로 당선시킨다.'석패율'(惜敗率) 제도에 대한 얘기다. 고착된 지역구도로 얽힌 우리 정치의 기형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일찍부터 거론되었던 선거제도다. 한국의 대표적인 정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이념정당이나 정책정당이라고 부르기엔 어설픈 구석이 한두 곳이 아니지 않은가? 영락없는 지역정당이기 때문이다. 듣기엔 거북하지만 한나라당은 영남당이고 민주당은 호남당이다.

이달 1일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 방송 좌담회에서 '정치가 지역감정을 부추긴다. 영남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나오고 호남에서도 여당 국회의원이 나오도록 선거법을 바꿨으면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동일한 맥락이다. 이번엔 중앙선관위에서 석패율 제도와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완전국민경선제) 도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선거법 개정 의견서'를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2월 임시국회에서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정치권의 분위기로 볼 때 다음 총선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석패율 제도가 도입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도 신년사에서 도입을 제안한 바 있고 민주당에서도 정치개혁을 논의할 때마다 언급했던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젠 석패율 제도의 도입이 문제가 아니라 도입됐을 경우 누구의 공(功)이 큰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일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예상대로라면, 내년 총선 이후 구성될 19대 국회에서는 영남에서 당선된 야당의원과 호남에서 뽑힌 여당의원을 볼 수 있을 것 같다.'지역주의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석패율 제도가 고질적인 지역 정당구도를 탈각시키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영남당이고 호남당이라는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까지 소망해 마지않았던 전국정당화(全國政黨化)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패율 제도는 적용범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지역주의 완화라는 애초의 도입취지가 퇴색될 수도 있다. 이 제도를 영호남 지역을 넘어서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면 총선에서 국민 심판기능은 약화되고 비례대표제의 의미도 희석될 것이라는 전망에 주목해야 한다. 실정한 집권세력을 응징하는 것으로 느껴왔던 정치적 카타르시스(catharsis)의 묘미를 앗아가고 직능대표기능을 보완하려는 취지에서 도입된 비례대표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가려진 것도 살필 수 있는 안목을 기대한다.

윤순갑 교수(경북대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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