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30대 중반의 여성이 현직 장관을 상대로 자신이 딸이라며 친자확인 소송을 내 승소한 일이 있었다. 이렇듯 유교 사상과 높은 도덕으로 무장한 우리나라에서 얼른 듣기에도 불경스러운 '친자확인'이란 것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91년이었다. 정확하게 부언한다면 친자확인을 위한 유전자 감식인데 당시만 해도 일반인의 인식이 높지 않아 의뢰는 거의 없었으나, 1995년 이후부터 의뢰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친자확인을 원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국적 획득을 위한 중국 교포들의 친자확인도 있고, 유산 상속을 위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많은 부분은 자기가 기르는 아이가 과연 친자식인지를 의심하는 경우로 요즘은 의뢰 건수가 한 달 평균 500건에 이른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이렇게 친자확인이 늘어나는 이유는 혼전, 혼외정사가 늘어나 배우자 사이의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정문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런데 결과에 대한 통계치를 보면 이러한 의심들을 뒷받침이라도 하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의뢰건수의 30% 정도가 친자가 아닌 것으로 나온다고 하며, 연간 검사자가 100만 명에 이르는 미국에서도 역시 통계치가 우리와 같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수치가 모든 남자의 약 30%가 남의 자식을 자기 자식으로 알고 키우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영국의 한 연구팀의 2005년 보고에 따르면 50년 넘는 기간에 걸친 자료를 검토한 결과 미국과 영국에서 자기 자식이 아닌 듯하다고 의심해 유전자 검사를 한 아버지들의 생부 불일치 확률은 30%에 육박하지만, 자기 자식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거나 친자확인 이외의 이유로 검사한 경우엔 약 4%만 친자식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통계들 때문에 공연한 의심으로 인하여 가정의 평화가 깨어지는 어리석은 일은 없겠지만 사실 검사비도 만만치는 않다. 유난히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우리 대구에서는 그동안 의뢰 건수가 워낙 미미하여 종합병원마다 법원에서 의뢰받는 경우만 검사하였고 일반인의 의뢰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랬던 것이 이젠 점점 문의 건수가 많아져서 우리 병원에서도 일반인을 위한 검사 서비스를 개설할 계획이라고 하니 그리 유쾌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래전에 들은 우스갯소리가 문득 생각이 난다. 어떤 부부가 자식을 내리 일곱 명을 낳았는데 남편이 보기에 막내만 전혀 다르게 생겼더란다. 평생을 의심하고 고민하던 중 부인이 중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되자 남편이 용기를 내어 부인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이 죽기 전에 하나만 솔직하게 답해 주오. 마지막 아이는 우리 애가 아니지?" 그러자 부인이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답했다. "그 애가 당신 애예요."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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