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엄니의 남자/이정록

엄니와 밤늦게 뽕짝을 듣는다

얼마나 감돌았는지 끊일 듯 에일 듯 신파연명조다

마른 젖 보채듯 엄니 일으켜 블루스라는 걸 춘다

허리께에 닿는 삼베 뭉치 머리칼, 선산에 짜다 만 수의

라도 있는가

엄니의 궁둥이와 산도가 선산 쪽으로 쏠린다

여태 전만해도 젖가슴이 착 붙어서

이게 모자母子다 싶었는데 가오리연만한 허공이 생긴다

어색할 땐 호통이 제일이라, 아버지한테 배운 대로 헛기

침 놓는다

"엄니 저한테 남자를 느껴유? 워째 자꾸 엉치를 뺀대유?"

"미친놈, 남정네는 무슨? 허리가 꼬부라져서 그런 겨"

자개농 쪽으로 팔베개를 당겼다 놓았다 썰물 키질소리

"가상키는 허다만, 큰애 니가 암만 힘써도

아버지 자리는 어림 읎어야"

신파연명조로 온통 풀벌레 운다

뽕짝을 좋아하면 나이 드는 증거라던데요. 어릴 적 뽕짝 좋아하는 고모를 속으로 경멸했었는데 내가 이제 그 고모의 시점에 왔습니다. 그러니 인생에는 절대가 없다고 했겠지요.

우리들의 쓸쓸한 '엄니'를 이리도 유쾌하게 그릴 수 있는 시인의 입담이 부럽습니다. 이 시인은 "엄니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으니 시가 되더라"고 말하는 축복받은 시인임에 분명하지만, 무엇보다 시의 순간을 잘 포착하고 중요한 정점이 어딘가를 찍어내는 감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그나저나 '엄니' 안고 블루스 한번 추어보지 못한 삭막한 제 입지를 생각하니 여한이 많은데요. 다음엔 꼭 엄니를 한번 안아봐야겠습니다. '가오리연' 만한 틈이 아니라 바가지만 한 허공이 생겨도 기꺼이 메우며 안아봐야겠습니다.

근데 이 시인의 '엄니'를 보세요. 그 정신이 얼마나 강건하신지. 젊은 아들놈에게 하나 꿀리지 않습니다. "니가 암만 힘써도 아버지 자리는 어림읎"다는 일갈을 보세요. 없는 아버지를 일순 더 환하고 높게 만드시는 저 넉넉한 심사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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