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우(53) 스님은 큰 욕심이 없어 보였다. 누구나 바라면서 쉽지 않은 '작은 행복'을 좇고 있었다. "제가 승려가 된 목적은 부처님처럼 득도하거나 해탈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어요. 그저 목숨을 놓을 순간에 죽음을 웃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고 출가했죠. 하지만 2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멀었어요. 그냥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스님은 대구 중구 동인동에 위치한 무심사 주지다. 무심사는 도심 속 자그마한 포교당으로 (사)한국불교 금강선원 소속이다. 그는 13년 전부터 사찰에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굳이 포교당을 지키고 있다. 포교당은 모든 것을 스님이 챙겨야 하기에 여간 피곤하지가 않다.
하지만 스님은 그런 생활이 즐겁다. "한번씩 심신이 지칠 때면 가창에 있는 석주사 주지로 가기도 합니다. 저는 포교가 좋아요. 수행을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살아있는 생활 공간에서 대중과 부대끼면서 그들의 얼굴을 보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 체질에 맞아요."
스님이 포교당을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13년 전부터 해온 청송교도소 교화와 경북대병원 법당 운영을 계속하기 위해서다. 교도소와 병원은 스님들 사이에 가장 꺼리는 곳이다. 포교 활동이 쉽지 않은데다 불전(佛錢)을 통한 경비 마련도 어렵기 때문. 특히 교도소의 경우 오히려 스님이 떡이나 음료수, 경전, 염주 등을 사들고 가야 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스님은 교도소 교화를 통해 스스로 많은 것을 깨닫는다고 했다. "그들을 보면서 동질감을 많이 느끼고 연민을 갖게 되죠. 저와 같은 승려와 수감자 모두 욕망을 억누르고 수행 생활을 하기 때문이죠. 단지 그들이 인위적인 수행이라면 저와 같은 승려는 자발적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죠." 스님은 말을 이었다. "수감자들은 사회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악하지 않아요. 오히려 여리고 선하죠. 단지 성장 과정에서 사고나 생활방식이 잘못 길들여졌을 뿐입니다. 배움과 권세가 없으니까 교도소에 가게 되는 것이죠."
스님은 수감자 중에 인연이 된 이들이 출감하면 몇 달 묵을 집을 얻어주면서 재기하도록 도왔다. 그들 중 지금까지 딱 1명만이 재기에 성공했다는 것. "틀에 박힌 생활이 습관이 안 돼 좀처럼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에요. 출감자들은 처음 몇 달은 사회 적응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교도소에 재수감되는 경우가 많죠. 정착한 1명은 현재 불자가 경영하는 큰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은 13년 동안 한 사람이라도 정착시켰으니 성공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경북대병원 법당 지도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도 그 같은 보람 때문이다. 임종을 앞둔 신도에게는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스님은 지난해 8월 서문시장 인근에 100㎡ 정도의 '서문법당'을 열었다. 이 포교당의 특징은 24시간 개방이라는 점이다. 서문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일정 시간을 내 기도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때나 찾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인근 노숙자들이 새벽에 잠자기 위해 애용한다. 그들이 신도는 아니어도 법당에 지내면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조금이라도 얻는다면 만족한다고 했다. "저는 '~답게'라는 말을 가장 좋아해요. 누구나 자신의 위치에 맞는 역할에 충실하면 현실이 곧 불국토입니다. 저 또한 앞으로도 승려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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