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메디컬 프런티어] 늘시원한 항문외과 노성균 원장

늘시원한항문외과 노성균 원장은
늘시원한항문외과 노성균 원장은 '환자 감동'이 있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앞서 병원 경영방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던 터라 대뜸 "걱정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대장·항문 전문클리닉인 늘시원한항문외과 노성균(49) 원장은 "당연히 걱정된다. 먹고살아야 할 텐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치질 수술을 많이 하기로 소문난 이 병원에서 왜 경영까지 걱정할까. 이유는 '환자가 진정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함'에서 출발한다.

◆호텔보다 더 호텔스러운 병원

'진짜 환자가 원하는 것'을 묻는 말에 노 원장은 엉뚱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자와 토끼가 서로 사랑해 결혼했다. 사자는 토끼를 위해 온갖 고생을 해가며 맛난 고기를 가져다 주었다. 토끼도 험한 산을 헤매며 산삼을 비롯한 영양식을 준비했다. 하지만 둘은 결국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를 묻자 그들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알아주지 않았다"고 답했다.'

병원마다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불만이 제기되면 '나름대로'라는 말을 붙인다. 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까. 남의 입장에 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로 일하면서 안 좋은 점을 많이 느꼈죠. 이른바 '환자 권리장전'이 마련돼 있지만 여전히 진료 중심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말 그대로 '아픈 것도 서러운데' 병원에서 푸대접까지 받는 꼴이 되고 있습니다."

노 원장은 귀한 손님을 맞는다는 생각으로 병원을 운영한다고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챙겨서 완치 후 아무런 불편 없이 보내는 것이 주인된 도리라는 것. "호텔은 멀쩡한 사람들이 편히 쉬러 가는 곳입니다. 하물며 아픈 사람이 찾는 병원은 호텔 이상의 서비스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존 병원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병원이 생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 원장은 식사시간이 따로 없다. 워낙 바쁜 이유도 있지만 환자들과 공감하기 위해서 환자들처럼 식판에다 똑같은 식사를 먹는다. 음식이 짜거나 너무 맵지 않은지, 고기는 너무 질기지 않은지, 채소는 싱싱한지 일일이 챙긴다.

병원 경영이 걱정스러운 이유는 인력 구조 때문이다. 의사는 2명인데 간호사를 포함한 지원부서 인력이 41명이나 된다. 11년 전 개원할 때만 해도 7명에 불과했는데 그 새 6배가량 늘었다. 물론 환자도 늘고 병원 규모도 커졌지만 인력 보강은 그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 "아무리 친절하게 환자를 대하라고 해도 자기 몸이 피곤하면 안 됩니다. 사람이 많아야 마음의 여유가 생기죠." 개인의원 최초로 주 40시간 근무와 로테이션 근무체제를 마련했다. 노 원장은 지금도 직원을 더 뽑고 싶어한다.

◆좌욕의 필요성 10년 넘게 강조

"제가 치질 수술은 한 지 15년이 됐지만 수술법의 큰 틀은 여전히 똑같습니다. 다만 기구가 발달하면서 종전에 40~50분 걸리던 수술이 10~15분이면 끝납니다. 시간이 단축되는 만큼 환자 불편은 줄어들죠."

최근 들어 치질 수술도 그저 증상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왕이면 기능적·미용적으로 나은 수술을 바란다는 뜻. "피부를 절개한 뒤 봉합하면 피부조직이 볼록 솟아나오는 이른바 '피부꼬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같은 수술을 해도 이런 부작용이 없도록 수술하는 게 낫겠죠. 경험이 쌓이면서 차츰 노하우가 생기다 보니 이런 일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대장·항문 전문병원이 생기고 차츰 인식이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들이 항문질환을 어디서 치료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아직도 일부 환자들은 항문이 아프면 남자는 비뇨기과, 여자는 산부인과에 찾아갑니다. 물론 잘못 찾았다는 말을 듣고 전문클리닉으로 옮겨오지만 그것도 환자 불편 아닙니까."

노 원장이 지난 2007년 5월 15일 '대(장)항(문)독립선언문'을 발표한 것도 이런 이유다. 장난기가 느껴지지만 내용만은 진심을 담고 있다. 그간 무지와 무관심 속에 방치했던 대장 및 항문의 건강을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좌욕의 필요성이다. 연말 선물로 좌욕기를 건네주고, 매달 15일엔 '대장 항문 독립의 날'로 정해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좌욕기와 태극기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10년간 나눠준 좌욕기만 얼추 1만~1만2천여 개에 이른다.

"여전히 비데를 좌욕기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매일 샤워하는데 좌욕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죠." 노 원장은 비데에 대한 잘못된 맹신 때문에 '변실금'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한 건장한 청년이 찾아와 자기도 모르게 대변이 새어나온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는 것. 알고 봤더니 나름 청결을 유지한다며 몇 년 동안 비데 물줄기를 항문 깊숙이 쏘아대는 바람에 생긴 부작용이었다는 것.

◆메디시티의 출발점, 결코 머지않아

"대장 전문의사인 저도 5년 전에 한 번 대장내시경을 받고 용종을 제거한 적이 있습니다. 의사도 이렇게 미루는 마당에 일반 시민들은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좀 더 관련 질환에 대해 알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하필이면 왜 대장·항문을 다루는 의사가 됐을까? 그는 "사람은 입이 2개"라는 말로 답했다. 먹는 입과 뱉는 입(항문)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항문이 중요하지만 그간 간과돼 왔다는 것. "인턴 시절 대장암 수술을 받은 한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며칠 간 배변을 못해서 고통스러워했죠. 손을 넣어서 숙변을 빼드렸는데 정말 고마워했습니다. 레지던트 1년차에 18세 된 남자 환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대장암 수술을 받았는데 6개월 만에 숨을 거뒀습니다.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 병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에 '무료 샐러드 바'를 연다. 적잖은 돈이 들지만 중단하지 않는 이유는 노 원장 스스로 다이어트의 필요성과 피해를 알고 있기 때문. "몇 해 전 의사회에서 연 몸짱의사대회에서 2위를 했습니다. 그때 다이어트를 했는데 변비와 치질이 쉽게 생길 수 있다는 걸 알았죠.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이 왜 변비와 치질이 시달리는지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다이어트도 잘만 하면 비만과 변비를 동시에 잡을 수 있죠. 그래서 섬유소가 풍부한 샐러드 바를 열게 된 겁니다."

노 원장은 유쾌한 사람이다. 하지만 혼자만 유쾌한 데 만족하는 게 아니라 자기 병원을 찾아온 환자도 함께 유쾌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픈 것도 서러운데 눈칫밥까지 먹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병원 개혁을 시작했다. '메디시티' 대구의 출발점은 멀리 있지 않았다. 매일 아침 모든 환자의 머리를 감겨주는 병원 만들기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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