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되면 바꾸지"…토목공사 '처음대로' 10%도 안돼

대구시 건설·토목공사 잦은 설계 변경 왜?

대구시 건설공사에서 잦은 설계변경으로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 대구국제학교는 4차례 설계변경을 하면서 사업비가 6억원가량 증액됐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시 건설공사에서 잦은 설계변경으로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 대구국제학교는 4차례 설계변경을 하면서 사업비가 6억원가량 증액됐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시 건설·토목 공사에서 설계변경이 일상화되면서 연간 수백 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들고 있다. 예산 낭비는 물론 설계변경 과정에서 잡음도 들린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설계변경이 건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설계변경 얼마나 되나

대구시가 지난해 발주한 사업 중 계속사업은 20건(공사비 1천865억원)이었고, 완공사업은 18건(231억원)이었다. 이 중 30건의 공사가 설계변경으로 공사비가 대폭 늘어났다.

계속사업의 경우 260여억원 규모인 서구 이현펌프장~금호택지 진입교량 건설 공사는 설계 변경으로 6억원가량 추가 투입됐다. 400여억원이 들어가는 환경자원시설 조성공사는 설계변경으로 18억여원이 증액됐다.

사업이 끝난 대구국제학교는 4차례에 걸쳐 설계변경이 이뤄지면서 사업비가 6억원가량 증액됐다. 동구 이시아폴리스 내 대구국제학교의 경우 건축, 토목, 설비, 조경, 정보통신, 전기 등 전 분야에 걸쳐 설계를 변경했다. 대구씨름장은 3차례나 설계를 변경했다.

설계 변경으로 사업비가 10% 이상 증액된 사업도 많다. 신천강변 스포츠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공사는 당초 1억6천200만원에서 두 차례의 설계 변경으로 2억9천600만원이 들어 73.3%가 증액됐고, 중앙로 대중교통 전용지구 조성 전기공사도 두 차례의 설계변경으로 사업비가 64.5% 늘어났다.

서부환경사업소 소수력발전 시설공사는 2억3천600만원에서 설계변경으로 34% 증액돼 최종 3억1천600만원이 소요됐다. 이처럼 잦은 설계변경으로 대구시 사업에서 지난해에만 195억7천400만원이 추가 비용으로 들어갔다.

한 토목업체 관계자는 "토목공사의 90%가량이 설계변경된다"며 "단위 사업별 추가 비용은 많지 않지만 전체 사업의 추가비용을 모두 합치면 설계 변경으로 해마다 수백 억원이 들어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설계변경 왜 잦나

공사비를 부풀려 설계한 뒤 감사원 지적을 받은 후 설계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대명천 오수차집관거 시설공사의 경우 시멘트 액체 방수 예산이 과다하게 책정됐다는 이유로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

대구시 건설관리본부는 부랴부랴 2억여원을 삭감해 다시 설계했다. 팔공로~공항교 지하차도 건설공사도 당초 철근값을 높이 책정해 설계를 했다가 감사원 지적을 받은 뒤 3억6천여만원을 줄여 새로 설계했다.

이에 대해 업체 관계자는 "공사비를 과다하게 책정해 놓고 어물쩍 넘어가면 그만이고, 지적을 받으면 설계 변경을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첫 설계를 부실하게 한 탓에 다시 설계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업체들은 처음 설계를 하면서 소위 '스펙'으로 불리는 특허제품, 신용실안, 특수공법 등을 설계에 반영시킨다. 스펙은 일반 용품과 공법에 비해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 한정된 예산으로 스펙들을 많이 채택하면 공사비가 증가하는 까닭에 다른 품목의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 후에 공사 도중 설계를 변경해 공사비가 줄어든 품목의 예산을 증액시킨다는 것. 문제는 스펙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스펙 보유자와 발주처가 특수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스펙을 많이 채택하면 예산이 한정돼 있어 다른 품목의 예산을 줄여야 하고, 이 예산을 보전하기 위해 설계 변경을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스펙 보유자가 설계 전 로비를 통해 발주처 관계자들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유착 관계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업체 관계자는 "관급공사를 따고 설계도가 나오면 어떤 스펙이 채택됐는지부터 살핀다"며 "관급공사에 스펙이 많고, 특히 교육청 발주 공사에 더 많다"고 말했다.

◆공사부풀리기로 사용되나

토목 공사의 경우 터파기 작업 과정에서 설계 변경이 잦다. 땅을 파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암석 등이 나올 경우 어쩔 수 없이 설계 변경을 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작업(?)'이 들어갈 수 있다고 업체 관계자들은 전했다.

우리나라 지질은 토사-풍화암-연암-보통암 순의 지층 형태를 보인다. 토사를 파내는 것에 비해 보통암 제거 작업은 최고 50배가량의 비용이 더 든다. 가령 토사 1㎥를 제거하는 데 1천원이 들어가면 같은 부피의 보통암을 제거하는 데는 4만8천원가량 필요하다. 업체 관계자는 "토사를 제거한 뒤 풍화암이 아닌 연암이 곧바로 나온 것으로 설계를 변경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는 시공사와 발주처 간 암묵적인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파낸 토사를 버리는 것도 가까운 지역이 아닌 의도적으로 먼 지역을 선택해 공사비를 부풀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

한 건설회사 대표는 "설계 변경으로 공사비는 증액되지만 막상 인상된 공사비가 현장에 내려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며 "또 특허공법이 사용되는 토목 공사의 경우 설계 변경을 통해 공사비가 인상되지만 실제 그만큼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운영자 측의 요구 때문에 설계를 변경하는 경우도 있다. 대구국제학교의 경우 건물 내·외부 마감재를 수성페인트에서 폴리싱타일과 실리콘페인트로 교체한다는 명목으로 설계를 변경했고, 화장실 소변기를 매립형에서 내장형으로 교체하기 위해 설계를 바꿨다.

설계변경 원인을 두고 행정사무감사를 벌인 대구시의회는 공사업체가 마진이 떨어지거나 이익이 나지 않을 경우 설계 변경을 악용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장경훈 대구시의원은 "과거 공사업체 이익 보전, 공무원과 밀착 등으로 인해 설계 변경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주장했다.

대구시 건설관리본부 관계자는 "주민 민원, 물가상승, 뜻하지 않은 지반물이 나타나는 등의 경우 설계 변경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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