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우리는 카다피와 뭐가 다른가

무아마르 카다피.

그는 지금 리비아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고 있다. 국제연합 등 국제사회로부터도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지구촌의 외톨이로 전락한 것이다. 42년간의 철권통치에 종말이 다가온 원인은 무엇일까. 집권 초기 애국적 초심(初心)의 상실, 끝없는 탐욕, 오만과 독선, 족벌과 동족 끼리끼리의 부패, 타협을 모르는 폭력성…. 카다피의 과오들은 독선에 빠진 인간과 부패한 권력이 지니는 모든 속성을 다 갖추고 있다. 그래서 리비아 민중은 분노했고 지구촌의 양심은 그의 탐욕과 독선, 폭력성에 침을 뱉는다. 그 어떤 권력의 권위와 탱크와 총칼의 힘도 이성(理性)적 양식과 보편적 양심, 공공의 윤리 앞에선 맥없이 무너진다.

지금 허물어지고 있는 카다피의 몰락을 바라보면서 하나의 물음표를 던져보게 된다.

'우리는?'이란 물음이다. 우리에게는 '끊임없는 탐욕'이 없고 '오만과 독선'은 없으며 끼리끼리의 부패와 투쟁적 폭력성은 없는가라는 의문이다. 사방을 돌아볼수록 '우리는 카다피와 뭐가 다른가'라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서민은 일평생 단칸방 집 하나 살까말까 한데 해마다 몇 번씩 부동산을 사고판 사람이 사법부의 지도자가 되려 하는 세상, 탈세로 스위스은행에 947억 원을 빼돌려 놓고 납세자 표창 받는 위선적 탐욕이 판치는 세상은 8명의 자녀들이 리비아 국부(國富)를 다 차지하려 드는 카다피의 탐욕과 얼마나 다른가. 힘 약한 공공근로 여직원의 머리채를 잡아챈 폭력 시의원을 저네 편 당(黨) 사람이란 이유로 징계 반대표를 던져 옹호하고 구해낸 독선, 약한 자에 대한 부당한 폭력도 정치적 힘을 가진 자의 비호 아래 묵인되는 나라, 패거리끼리 파렴치한 비행과 폭력을 감싸고 덮어주는 썩은 정의는 혁명수비대 탱크의 힘으로 돌멩이만 쥔 민중을 깔아뭉갠 카다피와 얼마나 다른 것일까.

야당의 폭력적, 투쟁적 행동양식은 화약만 들어있지 않을 뿐 총탄처럼 보편적 양식에 구멍을 내고 온건한 질서를 찢는다. 국회 연설에서 '대통령 형님 물러나라'고 한 연설 직후 모인 야당의원들이 '형님! 여당의원 ○○이 지랄할 때 '야 이 ×새끼야'라고 하실까봐 조마조마했어요…' '나는 의자 들고 던지든지 해야지 말로만은 못해'라고 한 폭언들이 TV에 걸러지지 않고 나온 것은 카다피의 폭력성과 또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일까.

어느 목사는 '정부가 이슬람 펀드에 동의하면 영원히 대통령을 하야시키기 위해 싸우고 내년 선거 때 이슬람 지지하는 사람 나오면 기독교인들은 목숨 걸고 싸울 것이다'고 했다. 이 나라 경제와 대통령 목이 일부 기독교인들 손에 왔다 갔다 한다는 듯한 오만함이 묻어난다. 종교계에까지 이럴진대 다른 조직 곳곳에 팽배한 오만과 폭력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또 어떤가. FTA 협상 합의문의 내용이 틀렸음에도 그대로 배짱 부리듯 국회에 내놓고, 국회는 '정부 버르장머리를 뜯어고칠 것이다'며 공무원 조직의 오만함을 공격한다. 모두가 제각각 자기 자리 위에서 '감히 나한테'라는 군림과 '내가 하는 일에 감히…'라는 오만을 부린다. 그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시속 300㎞로 달리다 급정거를 해도 원인조차 알아보지 않은 채 다시 달리는 KTX, '너희들(승객)은 알 것 없어! 목숨이나 담보해!'라는 오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카다피식 비타협적 독선은 교육계에도 있다. 일부 좌파'진보 교육감이 집권한 8개월 동안, 리비아 혁명수비대와 시민군처럼 체벌, 무상급식, 평준화 지정, 전교조 교장 선거 등… 사사건건 교과부와 맞부딪치며 '대치'하고 있다. 국민의 상식과 여론은 이미 심판 능력을 상실했다. 내 생각과 다른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힘 있는 자일수록 더 제 위치만 굳히고 제 몫만 챙기며 버티기로 나간다. 나의 심기, 나의 목소리만 있고 가려 있는 민심의 분노나 반론의 목소리는 들으려하지 않는다. 이러고도 '한 방울의 피가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카디피의 독선, 오만, 폭력성과 무엇이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두려워해야 한다. 독선, 폭력, 부패, 탐욕을 침묵으로 바라보는 민심엔 반드시 한계가 온다. 시민군(市民軍)이 별건가. '이건 아니다' 싶은 작은 개울 줄기가 여기저기 모여 오만, 폭력, 탐욕을 순식간에 쓸어버리는 거대한 물결이 될 때, 그게 바로 시민군이다. 지금 우리 주위엔 그 물결을 모르는 겁 없는 카다피들이 너무 많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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