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참된 민주주의 실현

우리가 고대 아테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를 존경하는 이유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죽기 전에 한 말 때문일 것이다. 그의 친구이며 제자인 크리톤(Criton)은 잘못된 재판으로 친구가 죽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이웃 지방으로 도망갈 것을 권하였지만, 소크라테스는 "감옥을 몰래 빠져나가는 것은 법률이나 판단에 의하여 국가와 국민이 맺은 관계를 파기해 버리는 것이 된다"며 탈옥을 단호히 거절하고 독배를 마시고 생을 마쳤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아마 잘못된 법으로 인하여 자신이 죽음에 처해진다면, 이야말로 '개죽음'이라며 법을 거역하고 도망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망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택한 소크라테스야말로 진정한 철학자이며 인류의 영원한 스승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국민들에게 가깝게 느껴지던 시기부터, 즉 군사정권이 끝나고 여러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본격화되면서부터 국민들 사이에 준법정신이 이전보다 더 후퇴하는 경향이 나타났음은 매우 역설적이라고 생각된다. 이전의 정통성이 부족한 정부에 의해 취해졌던 억압에서 해방되었다는 이유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현상이 아직까지도 여전함은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미국 유학시절 가끔씩 시위현장에 가 보았지만, 경찰이 지정한 장소에서 그것도 '경찰이 지정한 범위'(police line) 안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자신들의 의사를 당사자들과 일반 국민들에게 진지하게 표현하고 해산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시위는 아직까지 많은 경우 거리를 점령하거나 경찰과 몸싸움을 하곤 한다. 국가의 공권력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고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시위법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아마 이러한 형태의 시위 근저에는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믿거나 현존하는 법이 '악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시위자들은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을 불법이라고 지적하는 사회의 다른 세력들의 불만이나 비판에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매우 주관적인 생각이며 우리 민주주의의 슬픈 현실이다.

지난달 24일 한국은행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2만165달러로 집계됐다. 2007년 2만1천700달러를 기록한 이후 줄었다가 다시 3년 만에 처음으로 2만 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걸맞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법을 지키는 데 보다 투철해야 할 것이다. 법이 자신들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거나, 또는 시대정신에 뒤떨어진다고 해서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민주주의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만약 그 사회의 대다수가 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법을 다시 만들거나 개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될 때까지 이미 존재하는 실정법은 싫든 좋든, 자기에게 불리하든 유리하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이미 사회로부터 공인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나, 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있어야 한다. 이들에 대한 신뢰가 없어질 때는 선거를 통해서 정부를 바꾸고,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들을 바꾸면 된다. 그런데 내가 원하지 않는 정부가 탄생했다고 해서, 반대했던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해서, 그 정부나 해당 국회의원을 인정하지 않는 것 역시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가치의 상대성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 특히 다양한 세력과 계층 간의 이해가 공존하는 민주사회에서 자신들의 의지를 물리적인 힘으로, 또는 여론몰이를 통하여 관철시키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결코 혁명과 같지 않다. 즉 각자는 비록 자신들의 생각이나 태도가 옳다고 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함에 있어 법 절차에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옳다는 점을 인식시키면서 적법하게 행동해야 한다. 약자에게 불리하고 강자에게 유리하게 정해진 법이 있다면, 강자를 그동안의 기득권층이라고 하여 무조건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먼저 룰을 고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또한 가치의 상대성을 인정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꽃 피우기 위해서는 대통령부터 유치원생에 이르는 모든 국민들이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되새겨 봐야 할 때이다.

신효진(경일대 교수·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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