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개인적인 일에는 매우 정직하기로 소문나 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메이와쿠(迷惑)를 제일 싫어하는 민족이다. 또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가 남의 물건을 훔쳐 먹었다고 하자 아버지가 아이의 정직함을 보여주기 위해 배를 갈랐다는 얘기, 비가 그쳐서 버스 승강장에 우산을 접어 걸어두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얘기 등을 선생님으로부터 많이 들어왔다.
20여 년 전, 일본을 방문한 지역 기업인이 장난삼아 실험을 하나 했다. 도쿄의 백화점에서 구입한 제법 값나가는 물건을 포장한 채로 백화점 안 구석에 두기로 했다. 그리고 두 시간 후에 돌아와 그 물건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기로 한 것이다. '설마 사람 사는 동네에 그렇게 정직한 사람만 있겠느냐'는 게 그 사람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 시간 후 확인해 보니 그 물건은 정확히 그 자리에 있었다. 일본에 대해 다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그 기업인은 귀국행 기내에서 한마디 말도 없이 깊은 생각에 잠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때문인지 일본제 물건에 대한 신뢰도는 엄청났다. 미제(美製)가 판을 치던 시대였지만 미제는 '튼튼하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일제는 '틀림없다'는 평을 받았다. 작은 나사에서부터 전자제품까지 '일제'(日製)는 이렇게 지금 40대 이상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이러한 신뢰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주장, 경제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모국인 일본의 정직한 사회 시스템을 보고 얻어낸 아이디어였다.
이런 일본에서 최근 신뢰에 금이 가는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교토대와 와세다대 등 유명 대학의 입시문제가 유출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린다. 이뿐만 아니다. 정가(定價)제 판매로 유명한 일본 시장에서 중국산 수산물을 일본산으로 속여 판매하다 적발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고 하니 금석지감(今昔之感)이 든다.
세대가 바뀌면 분명 사회 시스템도 변화한다. 일본의 최근 사례에서 보듯 신뢰도 그대로 답습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변화하는 세태에 따라 사회의 신뢰도 기준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믿음과 신뢰도 자본처럼 평소에 늘 점검하고 가치 증식을 위해 꾸준히 가꾸어나가야 한다. 지금 일본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교훈이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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