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3·1절은 잊혔다

3·1절하면 생각나는 것은? 뽀로로, 북한이 쳐들어 온 날, 학원 바빠서

제92주년 3·1절 전야 횃불행진이 28일 오후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일원에서 열려 학생 등 참가 시민들이 횃불을 들고 행진에 나서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제92주년 3·1절 전야 횃불행진이 28일 오후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일원에서 열려 학생 등 참가 시민들이 횃불을 들고 행진에 나서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3·1절은 학교가 개학하는 전날이에요." "3·1절엔 신사임당이 떠올라요."

올해 3·1절이 92돌을 맞았지만 지역 초등학생들과 유치원생들에게 3·1절은 생소한 날이었다. 대구시내 유치원생, 초등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3·1절은 무슨 날인가(의미) ▷3·1절 하면 생각나는 사람·사건 ▷3·1절에 국기를 다는가 등의 질문을 던져봤다.

◆3·1절은 개학 전날

대다수의 아이는 3·1절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김모(교동초 4년) 군은 "유관순이 독립했던 날이다. 근데 무슨 독립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이모(교동초 6년) 양은 "어디서 들어본 거 같고, 유관순도 들어봤고, 근데 의미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모(동촌초 2년) 군은 "목숨 바친 장군들에게 감사하는 날"이라고 대답했다. 최모(성남초 3년) 양은 "무슨 날인지 몰라요. 국기는 엄마가 그냥 달았어요. 왜 다는지 궁금한 적은 없었어요. 노는 날이라 그냥 친구들이랑 즐겁게 놀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생들도 엉뚱한 대답이 많았다. 정모(두산초 4년) 군은 "3·1절은 학교가 개학하는 전날"이라고 말했다. 장모(11) 양은 "북한이 쳐들어 와서 전쟁이 터진 날"이라고 했다.

초교 5학년인 김모(12) 군은 "세종대왕이 우리 땅을 세운 날인가"라고 되물었다. 조모(13) 군은 "옛날에 죽은 병사들에게 애도하는 날이고, 국화를 앞에 놓고 묵념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소수지만 3·1절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박모(12) 군은 "유관순 할머니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을 외친 날"이라고 정확히 말했다.

◆3·1절은 뽀로로?

3·1절에 생각나는 사람에 대해 '유관순'이라고 대답한 아이들은 극소수였다. 대부분 아이의 입에선 기상천외한 이름들이 쏟아졌다. 유치원생인 박모(5) 양은 "뽀로로"라고 했다. "아빠가 3·1절에 뽀로로 인형을 사주기로 했어요." 3·1절에 뽀로로가 생각나는 이유였다.

박모(10) 양은 "유관순 언니에게 시한폭탄이 펑 터졌어요"라고 대답했다. 강모(11) 군은 "세종대왕 맞죠? 이순신 맞죠?"라며, "하여튼 거기서 황제가 돌아가셨어요"라고 말했다. 김모(9) 양은 "신사임당. 맞아, 그 언니 있잖아, 신사임당"이라고 확신했다. 박모(8) 양은 "광개토대왕이에요. 내가 아는 유명한 사람"이라고 자랑하듯 말했다.

대다수의 학생은 태극기를 단다고 했다. 하지만 왜 다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모(12) 양은 "부모님이 챙겨서 대문 밖에 단다"고만 했고, 장모(13) 군은 "부모님이 태극기를 다는 것을 봤다"고 답했다. 구모(11) 군은 "다는지 안 다는지 잘 모르겠다. 신경 쓰지 않아 모르겠다"고 말했다.

황모(10) 군은 "국기를 다는 날인데 내려서 다는 날"이라며, "독립운동 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죽어서 슬픈 탓에 국기를 내려서 단다"고 했다.

◆아이들이 무슨 잘못? 어른 탓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 교육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초등학교 5학년, 1학년 자녀를 둔 정인혜(37) 씨는 "4학년 때까지는 학교에 국사 과목이 없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국·영·수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라고 말했다.

송인주 대구교대 교수는 지난해 '예비 초등 교사들이 본 한국사(韓國史) 교육의 문제점과 향후 과제'라는 논문을 통해 ▷교육시스템 ▷교과서 구성 ▷수업내용과 방법 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이 ▷수능 위주의 입시 정책 ▷정권에 따라 흔들리는 역사 교육 ▷한국사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정부 인식 미흡 ▷잦은 교육과정 개정 등으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희흥 대구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일본 식민지배에 대해 우리 학교에서는 크게 강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교육 과정 개편에서도 역사교육이 점차 약화하고 있고, 인물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다 보니까 학생들에게 크게 각인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3·1절 관련한 질문에 대한 초교생들의 답변

"우리나라를 되찾은 날"

"공휴일, 빨간 날"

"국민이 만세를 부른 날"

"유관순 누나가 독립운동을 한 날"

"세종대왕이 우리 땅 세운 날인가?"

"처음 들어봤어요"

"옛날에 죽은 병사들에게 애도를 표현하는 날. 국화 앞에서 묵념하는 날"

"유관순이 독립했던 날. 근데 무슨 독립인지는 모르겠어요"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유관순도 들어봤고, 근데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안 들어봤다. 요즘 학원 가기 바빠서 모르겠다"

"나라 잃어 슬픈 날"

"전쟁 한 날, 막 싸우고 그러는 모습을 TV에서 봤다"

"6·25 전쟁 날. 싸우는 모습을 TV에서 봤다. 싸우는 것 하면 6·25전쟁이 생각난다"

"쉬는 날, 아버지가 회사에 가지 않는다"

"학교 안 가는 날"

◇3·1절 하면 누구 또는 무엇이 생각나나?

"뽀로로"

"세종대왕 맞죠? 아! 이순신 맞죠?…, 아닌가?"

"시한폭탄이 펑 터졌어요, 어…, 그 다음은 잘 모르겠는데…."

"북한이 쳐들어왔어요. 전쟁이 터졌어요"

"일제가요, 한글을 쓰지 못하게 했어요"

"딴 건 모르겠고요. 일제 강점기였다는 것만 생각나요"

"유관순, 김구…, 독립운동가라서 기억이 나요"

"유관순,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신사임당, 맞아…, 그 언니 있잖아, 신사임당'

"이순신, 제일 유명한 위인"

"광개토대왕, 내가 아는 유명한 사람"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