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차 대접

미대를 졸업하고 내 인생을 화가로 끝장을 보겠다며 처음 마련한 작업실이 세 평 겨우 넘는 시장 모퉁이 상가 골방이었다. 그림 하나 펼쳐놓고 돌아앉기도 좁은 공간이긴 했지만 손님은 찾아오기 마련이어서 자연스럽게 차 대접이 시작되었다. 비록 나와 열정이나 처지가 비슷한 그림쟁이들과 가난한 시인이 대부분이긴 했어도 그들은 하나같이 내 정신의 강을 풍요롭게 하는 지류들이었다.

마음과는 달리 작은 둥지로 날아든 그들을 위한 대접이래야 주머니 사정 가는 대로 곡차와 커피, 음료수, 보리차 코스를 비켜가지 못했다. 한번은 공교롭게도 주머니가 텅 빈 날 귀한 친구가 멀리서 찾아 왔다. 결코 소홀하게 대접할 친구가 아니어서 궁리 끝에 커피나 배부르게 먹자고 제안했더니 오히려 그 친구는 감격스러워했다. 급히 전기밥솥에 가득 물을 끓이고 가루 커피를 부어 아예 한 솥 삶아 설탕과 크림으로 적당히 조제한 후 우리는 한 사발, 두 사발 정말 여한 없이 커피를 퍼 마셨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고흐와 권진규의 고독과 비애를 흠모하고, 무소르그스키에 엎어지고 핑크 플로이드에 무너지며 밤을 새워도, 평생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을 듯한 포만감이 찻물 속에 젖어들었다.

차 대접에 그나마 격식이 갖춰진 것은 제주도에서 도예원을 하고 있는 벗이 건네준 청자 찻잔 다섯 개로부터 비롯되었다. 학이 구름을 넘나들며 날고 있는 그 잔들은 청자 빛이 하도 고와서 거기에 담아내는 차의 수준을 떠나 일단 방문객들을 기쁘게 했다. 하지만 그 여유로움도 오래가지 못했다. 차보다 찻잔에 더 애정을 쏟는 벗들을 따라 하나 둘 떠나보내고 지금은 한 개만 남아 있다. 작업에 이력이 붙어가는 동안 차 대접도 이제는 다기가 갖춰지고 세작과 우전, 국화차를 내올 만큼 눈부시게 발전해 나갔다.

요즈음엔 작업실 창밖의 소음을 물리치고 정적을 손님 삼아 가끔 차를 마시곤 하는데 특히 찻잔 속에 떠있는 국화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저 꽃잎처럼 가볍고 자유롭지도 못하고 허둥대는 나는 과연 어떤 향기가 있는 것일까? 만약 있다면 국화꽃이나 라벤더일까, 아니면 먼지 낀 도시 너머 야산에 피었다 지는 이름 모를 들꽃들 가운데 하나일까? 나는 무엇을 향해 맹렬하게 살아왔고 또 살아가려 하는가?

돌이켜보면 참 많은 차들을 이웃들과 나눈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차 맛에 대한 기억보다는 그때 그때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며 주고받던 사람들의 체취가 더 진한 향기로 남아 나를 훈훈하고 넉넉하게 하는 듯하다. 내가 받은 만큼, 내 삶과 예술도 세상 속에서 향기 되기를 바라며 오늘은 누가 내 차 대접에 동행할까 은근히 기다려 본다.

이 영 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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