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청색 물감 한 가지로만 완성된 이 작품은 일견 거대한 화산의 분화구에서 검푸른 물감이 마치 용암처럼 분출한 듯하다. 실제로 화면에는 넘쳐흐른 물감이 응결되면서 형성한 기포가 군데군데 나타나 있고 두텁게 층을 이루며 굳은 자리가 지난 혼돈의 흔적처럼 남아 폭발적인 에너지를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물감이 응고하기 전 지그재그로 방향을 바꾸며 밀어붙인 행위들은 대담하면서도 전체 공간의 구성을 고려해 시도되었다. 그래서 화면을 지배하는 것이 깊은 심연에 억제되었던 격앙된 감정의 표출 같으면서도 신중함이 돋보인다. 무정형 추상의 출현에서 이미 예고되었던 장석수의 작업 방향은 이 작품에서처럼 전형적인 앵포르멜 회화의 추구에 이르렀다. 58년 작 '사정'(射程)에서 시작된 본격적인 그의 비대상 회화는 그 전개상황을 보면 형태를 개척하는 이지적인 느낌의 추상보다 열정적이고 강렬한 정서의 뜨거운 추상을 지향했다.
이 작품은 우선 큰 화면이 시각을 압도한다. 이젤 회화를 벗어나 캔버스 대신 직접 제작한 대형 패널을 바닥에 놓고 한 작업인데, 페인트를 붓고 브러시 대신 페인팅 도구로 만든 주걱을 이용해 힘껏 민 자국이 필획처럼 드러났다. 잭슨 폴록이나 프란츠 클라인 같은 제스처 화가들과 비교한다면 장석수는 물감의 흘림 효과를 폴록의 드리핑 기법과 전혀 다르게 적용하고 있으며 클라인의 서체적인 붓놀림과도 큰 차이가 있다. 화폭 아랫면을 여백으로 남기고, 숭고한 느낌을 주는 굵은 기둥 같은 선의 도입은 피에르 술라주에 좀 더 다가간 듯 보이나 전혀 별개의 방식으로 탄생한 독자적인 표현이다.
그의 개성은 추상표현주의나 앵포르멜 작가들의 여러 기법들과 구별되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표현의 자발적인 성격을 극대화한 데 있다 하겠다. 물감의 번짐과 흘러내림의 효과를 실험한 공간 구성에서 정신적 깊이가 지닌 커다란 울림이 느껴진다.
장석수는 1921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나 장기초교와 교토 동산중학교를 거쳐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46년 대구여중을 시작으로 50년대에는 대학 강단에 섰는데 각종 저널에 동시대 서구미술의 새로운 동향과 작가들의 작품해설을 기고하여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데도 역할을 했다.
흔히 한국의 전후 추상은 서구 사조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나 심정적 접근을 통해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언급되곤 하지만 그 점에서 장석수는 아주 예외적인 인물이라 할 만하다. 그는 일본에서의 교육 덕분으로 추상미술의 전개과정을 훨씬 논리적으로 추구할 수 있었고 탄탄한 이론적 배경과 함께 실천한 작품으로 우리 현대미술사에 뚜렷한 각인을 남겼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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