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채] 우울한 일요일

일요일 오후 4시, 왜 비는 하루 종일 오는 걸까. 베란다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들어와 TV를 켠다. 뉴스 속 리비아의 상황은 아직도 참담한데 화면의 배경이 되는 독재자의 모습은 무슨 영화제의 금박 입힌 트로피인 양 코믹하면서도 섬뜩하다. 튀니지에서 날아오른 나비는 도대체 언제 어디쯤에서 그 날갯짓을 멈추고 안착하게 될까. 튀니지에서 카이로, 트리폴리, 그리고 또 어딘가로 파급될 게 눈앞에 훤히 보이는 세계가 꾸는 불안하고 두려운 저 나비 꿈이라니.

들고 있는 책장은 좀체 넘어가지 않으니 산책이나 할까 좁은 집을 다시 서성거리다 그마저 포기한다. 역시 비 오는 날의 징크스인 무기력감에 또 빠져든 게 틀림없다. 저혈압 때문이라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저 뉴스 속 일련의 사태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먼지 같은 개인의 미약함과 그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보태져 더욱더 몸이 무거운가 보다. 이 21세기에 최소한의 방비도 없이 맨손으로 구호를 외치다가 용병들의 쇠파이프와 무차별 총격으로 스러지는 사람들이라니.

오후 4시 36분, 계속 서성거리다가 들고 있던 책을 집어던지고 마침내 TV도 끈다. 며칠 전 한 여성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에, 또 '프롤레타리아인 척하고 싶은 부르주아지들의 가증스러움'에 분개하며 함께 통음했던 선배에게 전화를 한다. 대낮인데도 어두워요. 과연 누가 있어, 무엇이 인류를 구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해요. 술에 취한 듯 오래 횡설수설해대다 수화기를 놓는다. 아아, 이 공허와 허탈함이라니.

오후 5시 10분, 아직 뉴스 속 사람들은 하릴없이 스러지고들 있다. 다시 TV를 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가느다란 양초에 성냥이라도 긋는 심정으로 음악을 튼다. 인터넷으로 다운받은 피노체트 정권에 항거해 죽음을 무릅쓰며 노래하다가 양 손이 부러진 채 죽어갔다는 빅토르 하라다. '…우리는 승리하리라/ 수많은 사슬은 끊어지고/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비극을 이겨내리라….'

방문을 닫고 창이 차르르 울릴 정도로 몇 번 되풀이해 하라를 듣는다. 그러다 내쳐 블라드미르 비소츠키도 찾아 듣는다. 역시 젊은 나이에 죽은 구(舊)소련의 가수다. 마치 묵직한 해머나 철나비의 날갯짓 같은 그의 음유시 야생마, 두 주먹을 불끈 쥔 듯 부르는 이 처절한 노래들을 들으며 비오는 일요일 밤을 보낸다. 누가 왜 돈도 밥도 안 되는 글을 쓰며 또는 노래를 부르며 죽어갔던가.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오늘도 저렇게 스러져 가는가.

박미영(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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