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청도'영천의 3개 시'군 경계 부근에 우뚝 솟은 구룡산(675m) 아래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구룡산을 중심으로 서남쪽은 경산 용성면 구룡마을, 남쪽은 청도군 운문면 구룡마을이다. 북쪽은 영천시 북안면 상리이다.
수백 년 전에 이들 3개 시'군의 경계에 마을들이 생긴 이후 불과 20~30여 년 전만 해도 이들 마을을 연결하는 좁은 길이 나 있어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고 소통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새마을운동으로 경산 구룡마을로 가는 차 한 대 지날 정도의 좁은 콘크리트 신작로가 생기면서 마을과 마을을 연결했던 옛길은 잡목이나 잡초로 우거져 길의 기능을 상실했다. 특히 구룡마을에서 영천 북안 명주장과 대창장으로 가는 길은 등산로로 일부 기능만 할 뿐 그 옛길은 단절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경산에서 가장 오지이자, 바람이 머무는 곳 하늘 아래 첫 동네 '구룡마을'의 옛길을 찾아보았다.
◆3개 경계마을 연결한 실핏줄
길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다. 길은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의 창구요, 사람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건을 유통시키는 실핏줄과 같은 역할을 한다. 길은 교통수단의 발달에 따라 변화와 진화를 거듭한다. 교통로는 곧 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구룡산 아래 경산시 용성면 매남4리 구룡마을이 언제 생겼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약 200∼300년 전 생겼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구룡산 아래에는 경산 구룡마을 외에도, 청도 운문면 정상리 구룡마을과 영천 북안면과 대창면에도 마을들이 있다. 이들 마을 주민들이 왕래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기 위해 길이 필요했고, 그 필요성에 의해 길이 생겼다.
옛길기행은 이암지 인근 석장사, 구룡마을 가는 입구와 청도군 운문면 봉하리 가는 포장도로가 갈리는 길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을 입구 석장사 가는 길 초입에 누군가가 쌓은 돌탑 여러 개가 객들을 맞이하고 있고 차 한 대 다닐 정도의 좁은 콘크리트길이 나 있다. 이 뱀길 같은 도로를 굽이굽이 돌아 구룡마을로 가는 길이다.
5대째 용성 구룡마을에서 터전을 잡고 살고 있다는 최병조(77) 할아버지는 "19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마을에는 40여 가구에 2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살았었지. 마을은 높은 곳에 있지만 주민들이 많이 살았다. 이곳의 샘물이 잘 마르지 않아 논농사와 밭농사를 많이 지었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은 관청과 거리도 멀고 도로도 없는 관계로 쌀이나 쇠붙이 등을 강제로 거둬들이는 공출이 없어 그나마 위안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구룡산을 끼고 경산 청도 영천의 마을들을 연결하는 좁은 길이 있었지. 한 사람이 지게를 지고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이었지만 그 길을 통해 산에서 나무를 해다 구룡마을에서 15리 정도 떨어진 영천 북안 명주장이나 20리 정도 되는 대창장, 40리 떨어진 용성장, 더 먼 자인장까지 내다 팔았어. 장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옷가지나 보리쌀, 소금, 생선 등을 사서 뱀길 같은 길을 걸어 오면 꼬박 하루가 걸렸지"라고 했다.
19세에 이 마을로 시집와 쭉 살았다는 유분이(85) 할머니는 "몇 해 전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장남을 외지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쌀 보따리에 된장 한 병 박아 보냈다. 어린 자식을 험한 길로 눈물 흘리며 떠나 보내던 길"이라고 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한 번도 동네를 떠나 본 적이 없다는 김종해(77) 어르신은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신작로를 따라 청도 구룡공소 가는 중간 고갯길 정상 부근에 주막집이 있었다"면서 "이 주막집에는 용성 구룡마을과 청도 구룡마을 또는 정상리, 윗수암, 아랫수암 마을, 영천 북안이나 대창으로 가는 사람들이 몰려 사람들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왕래가 잦았다"고 알려줬다.
◆1990년부터 점차 잊혀져
길은 사람들과 같이한다. 사람들이 왕래하지 않는 길은 그 기능을 상실한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다닐 정도의 소롯길이지만 옛길을 통해 3개 시'군의 마을들은 서로 왕래하고 소통을 해 왔다. 혼례나 장례 때 다른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축하해 주고, 슬픔을 나누고 일을 도와 주었다. 보따리상들은 장을 보지 못한 주민들을 위해 소금이나 생필품을 이고 지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곡식이나 짐승털 등과 물물교환할 때에도 옛길을 이용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과 수많은 장사꾼들이 걸어 다녔던 상당수의 옛길은 1990년대 초반 새마을운동 당시 신작로가 나면서 단절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매남4리 최종목 이장은 "구룡마을도 새마을운동 당시 동네주민들이 군청으로부터 중장비와 시멘트 지원을 받아 자력으로 새 길을 닦고 중간 중간을 콘크리트 포장을 했다"고 했다. 그는 "신작로가 나기 전에는 석장사 뒤편에서 좁은 산길로 질러 가면 구룡마을을 쉽게 갈 수 있었지만 이제 그 옛길은 통행을 하지 않아 잡초와 잡목이 우거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용성 구룡마을과 청도 구룡마을을 연결하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났지만 사람들의 왕래와 소통은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구룡마을에서 영천 북안이나 대창으로 가는 길은 등산로로 일부 기능만 할 뿐 수십 년 전부터 단절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신작로가 생기면서 옛길이 없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기자가 구룡마을을 찾아간 날은 마침 며칠 전 내린 눈으로 인해 마을풍경이 수채화 같았다. 그 마을에는 인정이 남아 있었다. 마을 어르신 예닐곱 분이 최병조 할아버지 댁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윷놀이를 하면서 자식들이 사다준 과일이며 음료수를 나눠 먹으면서 인정을 나누고 있었다. 길손에게 옛길을 다니던 추억을 회고하는 이마에는 삶의 무게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평생을 자연에 순응하면서 순박하게 살아오신 삶의 여유와 평화로움이 가득 묻어났다.
청정한 구룡마을 주변 옛길에는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아름답다.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지난 봄날 뱀길 같은 산길을 따라 가다 지천에 널려 있는 산딸기들을 발견하고 새콤한 산딸기를 입속으로 밀어 넣었을 때 유년시절이 새록새록 생각나 그리움으로 가슴 아린 적도 있다. 이 옛길에서는 이름 모를 야생화와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한가롭게 뛰어노는 산토끼와 온갖 짐승들을 만날 수 있다. 자연 그대로를 품고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묵상을 할 수 있는 십자가의 길
용성 구룡마을에서 신작로를 따라가면 청도 구룡마을과 연결된다. 청도 구룡마을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용성성당 구룡공소로 유명한 곳이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윤봉주(60) 토마스 씨는 "구룡공소는 1815년 을해박해가 시작되면서 청송 노래산과 진보 머루산, 영양의 곧은정과 우련밭 교우촌 등지에서 살던 가톨릭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피난와 교우촌이 생겼다. 1921년 12월 20일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인 안세화(드망즈)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구룡공소가 축성되었다"고 소개했다.
윤 씨는 "무학중'고교를 설립한 이임춘 펠릭스 신부를 비롯해 서덕교 야고보 신부, 이재원 욥 신부 등 16명의 신부와 수녀들이 이곳 구룡공소 출신"이라고 했다.
이 공소에는 병인박해 후 1882년 경상도 지방을 순회 전교하던 로베르(1853~1922) 바오로 신부가 이곳에 와서 판공성사(가톨릭 신자들이 일 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고백성사)를 주었을 때는 공소 신자가 60명이었으며, 그 중에 53명이 고해성사를 보았고 50명이 영성체를 하였으며 6명의 외교인이 세례를 받았다고 교세 통계표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였다. 2가구 5명은 이곳에 살고 나머지 세 집 어른들은 도회에 나갔다가 돌아오길 반복한다. 주일 미사에는 10여 명의 신자들이 찾는다고 했다.
구룡공소 서쪽 산에는 10여 년 전 구룡공소와 용성성당 신자들이 1처서 14처까지의 돌로 된 십자가를 세우고 묵상을 할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을 만들었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한 발 한 발 옮기면서 묵상하며 걷는 십자가의 길은 고요하고 경건했다.
구룡마을 가는 옛길은 아직도 고운 흙길로 이어져 지난 세월의 자취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가 하면 설국으로 변한 주변 경관도 빼어나 기분 좋다. 특히 선인들의 체취가 흠씬 묻어난 옛길을 걷노라면 어느새 시공을 초월해 과거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한다. 가족과 사랑하는 연인, 친구와 함께 두 손을 꼭 잡고 옛길을 걸으면 어느새 행복으로 충만한 길이 될 것이다.
경산'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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