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동의보감'처방이 민간에서 많이 오·남용되고 때에 따라 서양의학이나 약리학적으로 잘못 해석되면서 서민 곁에 섰던 허준 선생의 뜻을 거스르는 경우가 잦아 책을 출판하게 됐습니다."
20여년 가까이 대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해 온 양승엽(50·인제 한의원) 원장은 한약재 오·남용을 막고 약재 효능을 높이거나 독성을 제거하는 수치법제(修治法製)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물고기 동의보감'을 펴냈다.
'물고기 동의보감'은 25권의 원전'동의보감' 중 탕액편 3권과 한의학의 원리를 밝힌'천지운기문'을 현대의학에 맞게 재해석한 뒤 원문(한문)을 달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문가는 물론 한의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책 표지 좌측 상단 물고기 그림은 죽어가는 물고기입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만성질환자를 말라가는 웅덩이 속에서 제 죽는 줄 모르고 있는 물고기에 비유한 것으로 한의학이 당면한 현주소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양 원장은 이 책을 통해 동의보감에 기록된 약재마다 채취시기와 건조방법, 품질과 효능이 높은 약재의 선별법도 원전에 따라 꼼꼼히 정리해 냈다. 동의보감 탕액편에 나오는 약재의 가짓수는 1천403종류. 6개월에 걸쳐 책을 쓰면서 그는 물 부문과 나물 부문에 한 가지씩, 나무 부문에 두 가지 약재가 빠진 것을 밝혀냈다.
양 원장은 내친 김에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한약재를 모두 데이터베이스(DB)화했다. 송이버섯을 예로 들면 코드번호가'0877-(HYC)채부(약으로 쓰이는 채소)-114 송이-버섯 7'이다. 이는 1천403가지 한약재 중 877번째로 기록돼 있고 채부 123가지 중 114번째로 기록됐다는 의미이며 7은 버섯류 탕액 중 7번째 기록이란 뜻이다.
"한의학의 세계화는 꿈도 못 꾸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약재의 DB는 4천여 종류인 동의보감 기본처방의 골격을 완성하는데 중요 열쇠로 쓰일 것이고 코드화된 약재는 유통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는 바람이 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한의사들이 처방에 의존하는 책은 오래 전 식품의약안전청이 발간한'대한약전외한약 규약집'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약재 관리와 감독에 허점이 있어 보다 안전하고 계량화된 한약재의 처방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동일한 진단에 각기 다른 처방을 하고 동일 처방이라도 그 속에 든 약재의 함량에 차이가 난다면 '과학적인 한약'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약재인 탕액을 개인의 임상경험에 따라 처방하면 약재의 과학성과 효능에 문란을 가져오고 한의사별로 주관적인 제조가 만연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양 원장은 늘 좋은 약재를 쓰자면서도 현실이 따라가지 않는 한의학계의 세태를 보정하고, 한방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한의학의 기본원리를 밝힌'천지운기문'과 실제 질병을 치료하는 동의보감 '탕액편'을 먼저 출간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탕액편 권2의'약으로 쓰이는 벌레'부문에는'백밀(白蜜)- 벌꿀 혹은 토종벌의 꿀. 산속의 바위틈에 있는 것으로 색이 희면서 기름 같은 것(상품)이 효과가 좋다. 비의 기운을 도와주고 이질을 멎게 하며, 입이 헌 것을 치료하고 귀와 눈을 밝아지게 한다'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술했다.
양 원장은 민족의학인 한의학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물고기 동의보감'이 한의학의 활로를 개척하는데 조그만 보탬이라도 되기를 기대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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