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학살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적지 않지만 윌리엄 허스코비치처럼 탈출한 유대인은 드물다. 헝가리 태생인 그는 1942년 12월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 다른 2명의 동료와 함께 미리 확보해 둔 절단기로 철망을 끊고 이곳을 벗어났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기차와 버스를 이용, 독일의 브레스라우와 쾰른을 거쳐 3주여만에 마침내 벨기에의 앤트워프에 도달했다.
허스코비치는 벨기에의 레지스탕스와 접촉, 수용소의 참상을 알렸다.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수용소 행 열차를 습격, 수백 명의 유대인들이 도망갈 수 있게 했다. 허스코비치는 이후 다른 사람으로 신분을 위장, 프랑스의 노르망디에서 지내면서 독일군에 대한 정보를 캐내 레지스탕스에 전하는 등 영웅적인 행위를 이어나갔다.
허스코비치는 함께 끌려갔던 그의 아내와 어린 두 딸이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숨진 사실을 뒤늦게 알고 애통해 했다. 그는 역시 홀로코스트로 남편을 잃은 처제와 다시 결혼해 세 딸을 뒀다. 미국으로 간 그는 카메라 회사를 설립, 쌓은 부를 사회에 기부하는 등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2006년 오늘, 92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김지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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