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봄의 길목에서] 청라언덕 올라 '봄의 교향악' 들어볼까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봄이 되면 어김없이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오는 추억의 노래다. 봄은 따스한 햇볕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마술사다. 지난 겨울이 유난히 혹독했기 때문일까. 어쩐지 늑장을 부릴 것 같던 봄이 한꺼번에 밀어닥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러다가 봄꽃이 한꺼번에 피어나, 금세 온 천지를 환하게 물들일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봄맞이 채비에 바쁘다. 모두 올해는 좀 더 화려한 봄을 맞고 싶어한다. 봄 마중에 나선 모습들은 아름답다.

◆달성공원에 봄이 밀려왔다

구제역의 여파는 대구 달성공원에도 얼음장을 놨다. 지난 겨우내 숨죽이며 굳게 문을 걸어 잠갔다. 1월 6일부터 한달 남짓 '출입금지'. 길고 긴 침묵이었다. 사람들도 동물들도 묵묵히 견뎌냈다. 지난달 12일에야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소독 터널을 지나 조심조심 동물들을 만났다. 겨우내 사육장에 갇혀 있던 동물들이 야외 운동장으로 나왔다. 가장 인기 있는 침팬지 '알렉스'도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 반가운 눈맞춤을 한다.

달성공원 김재현 관리담당은 "동물들에게 지난달 두 차례 백신 접종을 한 후 조심스럽게 손님맞이를 하고 있다"며 "동물들의 소중한 목숨이 달린 문제라서 정말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굳게 닫혔던 정문은 최근 활짝 열렸다. 침묵했던 달성공원에 본격적인 봄이 찾아왔다. 직원들도 봄맞이 채비에 분주하다. 조경담당 황난향(33) 주무관은 "이달 중순부터 봄꽃을 심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세계육상선수권 대회가 열려 외국 손님들이 달성공원을 많이 찾을 것으로 예상돼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단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백 주무관은 "봄을 맞아 쾌적한 관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동물들의 집을 깨끗이 정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완연한 봄기운을 즐기기 위해 외손녀 2명과 함께 온 이목의(63'대구시 동구 율하동) 씨는 "봄은 달성공원에 가장 먼저 오는 것 같다"며 "달성공원은 대구경북 사람들의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에 잘 보존하고 아껴야 할 곳"이라고 강조했다.

◆봄이면 생각나는 청라언덕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어릴 적에 자주 흥얼거렸던 '동무생각'의 일부분이다. 이 노래의 배경이 된 '청라언덕'이 대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노산 이은상 시인과 박태준 작곡가의 애틋한 사연이 스며 있는 곳이다. 청라언덕은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 자를 써서 '푸른 담쟁이덩굴'이란 뜻을 가졌다.

청라언덕은 당시 박태준이 다니던 계성학교의 아담스관과 맥퍼슨관, 그리고 언덕에 있는 동산의료원 선교사 사택들이 푸른 담쟁이덩굴로 휘감겨 있는 모습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가곡인 '동무생각'은 박태준(1900~1986) 선생이 마산의 창신학교 교사 시절에 만든 곡이다. 동료교사였던 노산 이은상(1903~1982) 선생이 글을 붙인 것. 박태준 선생이 계성학교를 다닐 무렵, 신명학교의 한 여학생을 사모했는데 고백조차 하지 못한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숨어 있다, 세월이 흘러 박태준 선생의 애틋한 첫사랑 이야기를 들은 이은상 선생이 즉석에서 가사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 노래 제목이 '벗을 생각함'이라는 뜻의 '동무생각'이다.

'동무생각'은 일본 식민지 시절 당시 마땅히 부를 노래가 없었던 청소년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얻어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져 나가 당시 청소년들의 애창곡이 됐다. 청라언덕에는 '동무생각'의 노래비가 있다.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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