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주영의 스타 앤 스타] 연극 '이기동 체육관' 출연 김수로

한동안 '한 땀 한 땀'이란 말이 유행했다. 이 땀은 바늘 한 코를 꿰는 것을 일컫는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의 땀은 어떤 육체적 행동을 했을 때 사람의 몸에서 반응하는 액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연극 '이기동 체육관'은 바로 이 '땀'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작품이다.

그 연극의 한가운데에서 손과 발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내달리는 한 사람이 있다. 우리에게는 유쾌한 이미지를 주로 보여줬던 그이기에 처음 그가 이 작품에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라는 것을 그는 단 첫회 무대에 서자마자 보여줬다. 물론 '이기동 체육관'이 대학로에서 작품성 면에서 인정을 받았던 연극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역시나 '김수로'라는 이름값은 매진 사례로 입증됐다.

유쾌한 배우 김수로를 땀내가 물씬 풍기는 공연장에서 만났다.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수백, 아니 수천 번 연습했을 법한 액션연기를 상대 배우와 맞춰보고 있었다.

"여기서는 이런 모습이 더 낫지 않을까. 한 번 해보자. 자, 이렇게!"

그의 목소리가 공연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런 것이 연극의 참맛일 테다. 드라마나 영화는 TV나 스크린을 통해 기술적인 작업을 거쳐 시청자들이나 관객에게 보여 지는 어떻게 보면 죽어 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 연기지만, 연극이나 뮤지컬 등의 무대예술은 그 자리에서 배우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날것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니 '활어'라 표현해도 되겠다.

그런 무대 위에 김수로가 섰다. 그도 이름이 유명해지기 전 무수히 많은 무대를 거쳤지만 그래도 그와 연극을 싱크로시키는 이는 지금 찾기 힘들다. 그만큼 김수로 하면 이제 영화배우로의 이미지가 크다. 결국 그가 무대에 섰다는 것 자체가 관객들에게는 화젯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얘기다.

"제가 연극을 한다는 것에 물음표를 던진 분들이 많다는 것 알아요. 하지만 제 스스로 연기자 김수로를 되돌아보고 또 초심의 저로 돌아가는데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사실 정말 과감한 결정이 아니고서는 연극을 하지 못하는데, 저는 좋은 결단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연극을 보신 분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더라고요. (배우로서의) 노선을 잘 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노선'의 골자는 결국 '배우의 길'일 텐데, 예전에 한 중견 연기자가 배우를 일컬어 "말 그대로 배우는 평생 '배우'라고 해서 '배우'라 불리는 것"이라며 "타인의 삶을 실제처럼 연기하기 위해서는 배우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어느덧 연기 인생 20년을 바라보는 그가 꿈꾸는 배우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역시 녹록지 않은 내공이 엿보이는 순간이다.

"추상적이고 힘든 질문이기는 하지만 매번 듣는 것이기도 해요. '연기란 무엇이냐'라고 하면 '결국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가 될 겁니다. 사실 극 안에서 제가 나무나 샌드백이 될 수도 있는 게 연기거든요. 여기에 배우가 얼만큼 창의적으로 표현해내느냐가 핵심이죠. 있는 그대로만 잘 보이면 1차원적인 것에 머무르겠지만 배우의 능력에 따라 창의력이 덧붙여지면 달라지겠죠. 결국 저는 그 창의력이 넘치는, 그래서 대중과 끊임없이 호흡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Dreams come true'라고 2002 한일 월드컵 때 많이 볼 수 있었던 구호가 떠올랐다. 김수로가 배우로 살아가는 모습이 딱 그 말과 들어맞아 보였다. 연기자로서의 삶을 스케치북이라 빗댄다면 그가 하나씩 이뤄가는 꿈은 그 빈 공간을 채워가는 그림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스케치북은 아무리 그려도 여백의 크기가 무한대인 모습이다.

김수로는 이번 연극에서 어렸을 때부터 권투를 사랑한 대학의 시간강사로 나온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여러 부분에서 빈틈이 보이고, 자신감 또한 모자란 캐릭터로 분한다. 하지만 복싱을 연마해가면서 그는 달라진다. 서서히 꿈과 희망을 찾아가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도 답을 찾는다. 그의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는 눈물이, 가슴에는 찡한 감동이 자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연극 '이기동 체육관'의 매력 포인트다.

"저도 청년 이기동이란 사람이 세상 사람에게 메시지를 던져주는 게 가장 좋았어요. 역할의 크고 작은 것을 떠나 10명이 고르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란 생각이 들었죠. 이기동의 대사 중에 '세상이 힘들고 지칠 때 우주에 한 번 가보고 싶다'라고 있는데,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복싱은 KO를 당하지 않는 이상, 또 도중에 포기하지 않는 이상 10회 또는 12회까지 매 라운드에 올라야 한다. 링 안에서 만큼은 두 사람의 치열한 경쟁이 인생의 축소판처럼 펼쳐진다. 오르내림이 분명하고, 마지막에 한쪽 손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 복싱이다. 하지만 그 승리에 이르기까지 피나는 연습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정말 한창 연습할 때는 선수들보다 더 훈련을 받았어요. 기본적으로 하루에 몇백 번씩 샌드백을 쳤고, 줄넘기는 셀 수가 없죠. 또 섀도라고 해서 끊임없이 발을 움직여야 하는 운동 역시 특훈을 받았거든요. 처음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죽겠다' 싶었는데, 이제는 공연을 마치고 나도 힘이 남아 있어요. 그만큼 체력이 올라왔다는 얘기죠."

복싱과 인생은 유사한 점이 많다는 점에서 김수로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현재 자신의 위치를 복싱의 라운드로 표현한다면 어디까지 온 것 같을까. 그러자 그는 "한 2라운드 정도?"라고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일반적으로 10라운드라고 한다면, 그가 말한 2라운드는 걸음마를 갓 뗀 상황인 셈이다.

"이제 겨우 제 이름 알렸잖아요.(웃음) 그 이름 알리는 정도가 1라운드고, 2라운드는 김수로란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 때라고 봐져요. 그런 면에서 지금은 3라운드 뛰고 있는 상황이에요. 복싱으로 말하면 심리전이라고 할까요. 상대 선수가 어떨까 탐색하는 때죠. 지금까지 영화나 드라마로 또 버라이어티로 저를 보여줬는데, 이번 연극 무대를 통해 저의 내적 성숙의 이미지도 보이게 됐잖아요. 앞으로 더 좋은 모습으로 설 테니 지켜봐 주세요. 파이팅!"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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