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음을 받은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나이로 볼 때, 또 자세히 모르지만 건강 상태로 볼 때 아버지의 죽음이 의외이기는 했다. 그러나 꽃은 지고, 사람은 나고 죽는 법이다. 엄종세는 슬프거나 울컥한 기분에 젖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아버지의 죽음은 자신이 치워야 할 다 먹은 밥상에 불과했다."
실직한 엄종세는 어느 날 아침 아버지의 부고를 받는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다. 그런 엄종세에게 아버지의 친구라는 장기풍이 나타난다. 베트남 참전용사라는 장기풍은 엄종세가 알지 못했던 아버지 엄시헌에 대해 들려준다. 아들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에게서 '사라진 존재'였던 아버지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조두진의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읽었다. '도모유키' '능소화' 등을 쓴 젊은 작가 조두진은 이 책에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지만, 가족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때 누가 물었습니다. '이봐라, 너그 세상에서 제일 참기 힘든 고통이 뭔지 아나?' 참기 힘든 고통? 공사판 노가다들한테는 안 어울리는 말이기는 합니다. 아무튼 사람들이 하나씩 대답을 했어요. 누구는 잠 못 자는 게 제일 고통스럽다고 했고, 누구는 또 팔다리 잘리는 거라고 했지. 엄 형님 차례가 됐는데, 대답을 않더라고요. 사람들 눈이 엄 형님한테 집중됐지요. 자기한테로 시선이 모아지니까 머쓱했는지 잠시 머뭇거리더니, '식구들이 굶는 거요'라고 합디다."
식구들 밥 굶는 것을 가장 큰 고통으로 알았던 아버지 엄시헌은 '의사들도 고치지 못하는' 병을 앓는 큰아들의 병을 고치려고 농촌에서 서울로 이사간다. 그리고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기 힘들자 공사판에서 노가다로 일하며 지방 소도시 김천까지 내려오게 된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함바집을 하던 미스 정을 알게 되고, 그 인연으로 함바집을 운영하며 평생을 살게 된다.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아버지를 필요로 할 때 아버지는 늘 곁에 없었고, 결국 아버지는 자식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을 때조차 그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희미하기만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의 모든 헌신과 희생은 오로지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굶기지 않으려고 술도 사먹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으며, 어떤 유혹도 거절하였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을 필요로 하는 큰아들을 위해 오토바이를 샀고, 매주 큰아들을 찾아가 오토바이 뒷자리에 아들을 태우고 운동장을 돌았다. 그리고 인삼비누로 큰아들의 몸을 씻겨주었다.
엄종세는 아버지의 삶을 알아갈수록 가족을 굶기지 않기 위해 아버지가 얼마나 고단하게 살았을지 이해하게 된다. 그 삶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하지는 못해도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힘껏 살았던 것이다.
"자네 말대로 엄 형님은 쪼잔한 사람이었지만 아버지 노릇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다. 자네는 아버지가 살아온 방식이 못마땅한지 몰라도, 그러면 안 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네 아버지 이름에 침을 뱉어도 자네는 아버지 앞에서 울어야 해. 자네 아버지가 정의로운 사람이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래 나쁜 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누구라도 침을 뱉을 수 있다. 그래도 자식인 너는 그러면 안돼! 자식인 놈은 마땅히 제 아버지 주검 앞에서 눈물을 흘려야 해!"
어려운 시절 많은 식구를 굶기지 않고 먹이고 입히느라 힘들었던 우리의 아버지들. 가족을 위해 한평생 헌신하지만,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아버지들. 은퇴하여 가족에게 돌아오지만 가족들은 그와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려 외롭고 슬픈 아버지들. 이 책은 그런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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