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대구 여성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이 있었다. 여성 대구시의원 6명이 뜻을 모아 대구시 여성가족정책연구원 설립 및 운영지원 조례안을 발의한 것. 이를 두고 여성운동단체는 물론이고 보수적으로 알려진 여성단체들조차 한목소리로 이를 지지했다. 특정 사안을 두고 여성 시의원 대부분이 똘똘 뭉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김덕란, 김화자, 배지숙, 신현자, 이재화, 정순천 의원이 그 주역이다.
2일, 시의회에서 배지숙, 이재화, 정순천 의원을 만났다. 그들은 이번 조례안 의결을 두고 '여성계가 화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여성가족정책연구원 설립은 대구 여성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경북은 1997년 여성정책개발원을 만들었고 현재 대구를 제외한 대부분 지자체들이 여성정책을 전담하는 전문기관을 두고 있다. 최소 비용 10억원 이상 예산을 들여 여성가족재단들이 운영되고 있다.
대구에도 여성정책 전문기관 설립을 위해 대구 여성계는 수년간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나마 뒤늦게라도 만들어지게 된 것은 여성들의 꾸준한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조례안을 의결하던 날, 마치 한편의 코미디 같은 발언들도 나왔다. 한 남성 의원은 "남성가족정책연구원을 만들라"고 요구했고, 또 다른 남성 의원도 "남자들도 힘들다. 남자들 형평성도 고려해달라"는 질의를 했다. 한 개그 프로그램의 '남하당 여당당'의 한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장면이다. 소위 사회지도층 남성들의 성(性) 인식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여성 시의원들은 대구는 여전히 보수적인 도시이며 아직도 남자들의 의식은 한참이나 뒤떨어져 있다고 개탄했다.
"사실 지금까지 사회 전반의 대부분 정책은 남성들이 만들어왔잖아요? 그러니 여성들의 시각이 반영될 틈이 없었죠. 절대 여성들의 특혜를 위해 여성가족정책연구원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의 숨겨진 특성을 개발해 전체 지역사회를 발전시키자는 것이죠."(배지숙)
정 의원은 최근 신공항 밀양 유치를 위해 삭발을 감행했다. 이를 두고도 말이 많았다. '왜 여자가 머리를 깎느냐', '왜 여자가 머리를 깎게 했냐'는 등의 말이 자주 오갔다. 남녀가 따로 없이 일을 해도 여전히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편하다.
"대구여성경제인들이 서울, 경기 다음으로 대구가 많아요. 대구 여성들이 독자적으로 발전해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여성들의 저력 때문이에요. 여기에 제도적 뒷받침이 된다면 훨씬 더 지역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겁니다."(이재화)
이번 조례안 발의에는 정 의원이 앞장섰다. 2008년에도 시정질문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여성들에게 표를 호소하지만 정작 여성정책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여성 스스로 요구하고, 외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여성 의원들은 하나로 똘똘 뭉쳤다.
그들은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크게 반발했다. 남성들이 만든 말에 여성들의 단합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 남성이 만든 부정적인 인식을 깨고 여성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면서 이런 시각도 불식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가족정책연구원을 이제야 만든 것은 시기적으로 이미 늦었어요. 몇 년 전에 만들었다면 지금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저출산 문제, 다문화가정 등의 현안을 원만하게 풀 수 있었을 거예요. 우리 지역에 맞는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하는 이유죠."정 의원의 말이다.
"여성 관련 정책들이 장기적 전망에서 이뤄지고 남녀 모두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기본적 인프라 구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여성 시의원들도 함께 힘을 모으겠습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