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출신으로 수원대 기계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권준오(25) 씨의 중학교 때 별명은 '똘끼'(똘아이 기질)였다. 남들은 상상만 하는 것을 직접 행동에 옳기는 약간의 무모함과 용기 덕분에 얻은 별명이다. 권 씨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나쁜 똘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별명이 싫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블로그 주소((http://blog.naver.com/kwonddolggi)에도 똘끼라는 단어를 넣었다. 똘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가 지난해 제대로 사고 한번 쳤다. 스쿠터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것. 배낭여행 또는 자동차여행으로 유라시아를 횡단한 사례는 더러 있지만 스쿠터를 이용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는 많은 교통수단 가운데 왜 스쿠터를 선택했을까. "배낭여행은 밋밋하고 자동차여행은 너무 빨라 이동하면서 많은 것을 놓칩니다. 반면 스쿠터는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빠르지 않아 이동 중에도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자유롭게 행선지도 바꿀 수 있어 다양한 것을 접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의 스쿠터 여행은 지난해 처음 이뤄진 것이 아니다. 2008년 말 제대한 뒤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준비를 했다. 1년여 동안 패스트푸드점 배달원, 학원 강사, 목욕탕 청소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학연수 비용을 마련했다. 권 씨는 출국을 한 달쯤 앞두고 중고 스쿠터를 구입해 전국 일주를 떠났다. 한 달 동안 그는 ㅁ자 형태로 국토를 종횡무진했다. 포항에서 7번 국도를 타고 통일전망대까지 올라 간 뒤 설악산~춘천~서울을 거쳐 태안반도~군산~해남 땅끝마을~완도~제주도~완도~보성~순천~지리산~부산~포항으로 돌아오는 대장정을 벌였다. "마음 가는대로 발길 닿는대로 스쿠터를 타고 이동하면서 얻은 최대의 소득은 우리 국토의 재발견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곳곳에 비경이 숨어 있었습니다. 혼자 즐기기에 너무 아까워 블로그도 개설했습니다."
그는 전국일주를 하면서 막연히 스쿠터 유라시아 횡단을 꿈꿨다고 했다. 하지만 어학연수가 코 앞에 다가와 있어 당시에는 유라시아 횡단을 하게 될 줄 생각도 못했다. 국내 일주를 마친 뒤 곧바로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권 씨는 어학연수를 하면서 스쿠터 유라시아 횡단 계획을 조금씩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도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중고 오토바이를 구입한 뒤 전공(기계공학)을 살려 리모델링해 비싼 가격에 되파는 일을 하면서 스쿠터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권 씨는 어학연수를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는 대신 중고 스쿠터를 장만했다. 영국을 출발한 권 씨는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독일~슬로바키아~헝가리~세르비아~불가리아~그리스를 거쳐 50여일 만에 터키에 도착했다. 터키까지의 여정은 비교적 순탄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혀 스쿠터 여행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발목을 잡은 것은 비자였다. "터키에 2주 정도 머물면서 이란, 인도, 중국 비자는 받았는데 파키스탄 비자는 받질 못했습니다. 파키스탄 비자는 인도에서만 받을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란까지 스쿠터로 여행을 하고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비행기로 아랍에미리트를 거쳐 인도로 들어갔습니다."
이란을 떠나오면서 생사고락을 같이 한 스쿠터를 기증한 권 씨는 인도에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아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40일 동안 인도~파키스탄~중국을 두루 둘러본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100일간의 유라시아 횡단이 마무리된 것이다.
유라시아 횡단은 권 씨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낯선 땅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 것은 외롭고 두려운 일이었다. 특히 이란을 통과할 때는 사막에서 꼬박 이틀을 보냈다. 땅을 베개 삼고 하늘을 이불 삼아 보낸 수많은 밤은 그에게 사색의 시간을 선물했다. 고생도 많았지만 훈훈한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낯선 이방인에게 기꺼이 숙식을 제공하는 이란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은 지금도 저의 가슴속에 벅찬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스위스와 독일 국경지대에서는 독일인을 만나 경비행기로 알프스를 관광하는 호사도 누렸습니다."
그는 배우고 느낀 것도 많다고 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한국기업의 간판이 보여 신장된 국력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을 높이는 계기도 됐습니다. 가장 큰 자산은 사람에 대한 믿음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얼굴 색과 말은 달라도 우리는 지구촌 한식구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20대 청년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을 선사한 것은 바로 주체할 수 없는 똘끼였다.
이경달기자 @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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